[취재파일] '포천 제초제 연쇄 살인'…끝나지 않은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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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명의 남편과 시어머니 연쇄살인

노모 여인의 주변에는 늘 불행의 그림자가 함께 했습니다. 전 남편 김모 씨는 지난 2011년 맹독성 제초제를 섞어둔 음료수를 마시고 즉사했습니다. 김 씨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이 났습니다.

졸지에 남편을 잃었다는 노 여인은 김 씨가 사망한 지 10개월 만에 노총각 이모 씨와 단란한 가정을 꾸립니다. 둘 사이에서는 곧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신혼이 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지 10개월 만에 시어머니가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재혼한 남편 이 씨마저 시어머니와 같은 병명으로 사망했습니다.

노 여인 주변에 있던 세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는 2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노 여인은 10억 원에 가까운 보험금을 손에 쥡니다.

● 무기징역 선고 받고 수감 중…친딸 독살 정황도 드러나

이 씨의 죽음을 수상하게 여긴 유족들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고, 끔찍했던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범인은 바로 노 여인이었습니다. 범행 동기는 보험금, 사치가 심했던 노 여인은 빚에 쫓기고 있었습니다.

수사 결과 노 여인이 전 남편의 딸 김 모씨에게도 제초제를 먹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받은 보험금으로 노 여인은 하루에 수백만 원을 쓰기도 하며 호화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1심에 이어 2심 법원도 지난 15일 노 여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 여인의 딸은 어머니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또 다른 악몽의 시작…4살 아들은 11개월 째 보호소에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가 싶었습니다. 노 여인은 범죄는 만천하에 드러났고, 죗값으로 수감 중입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어른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노 여인과 숨진 재혼 남편 이 씨 사이에서 태여난 아들 4살 이모 군입니다. 이 군은 벌써 11개월 넘게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한 보호기관에서 살고 있습니다. 숨진 이 씨의 누나  A씨가 조카를 양육할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소 신세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살인자인 엄마와 피해자인 아빠를 둔 네 살배기에게는 가혹한 일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노 여인이 제기한 후견인 선임 소송 때문입니다. 민법의 미성년자 후견인 제도에 의하면, 미성년자의 친권자가 없거나 친권자가 친권을 상실한 경우 법원에서 후견인을 선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숨진 이 씨의 누나 A씨가 ‘피후견인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거나 하고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후견인 지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A씨가 네 살배기 조카 이 군과 소송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A씨는 노 여인과 소송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숨진 이 씨의 재산을 둘러싼 분쟁이었는데요. 이 씨가 사망하고 노 여인이 친권을 박탈당하자 이 씨 재산에 대한 상속권은 자연스럽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 군이 가지게 됐습니다. 이 군이 노 여인의 소송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A씨는 이 군과 법적 소송을 벌일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법원의 형식논리적인 법적용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 “살인자의 자식끼리 똘똘 뭉쳐야”

이제 이 군의 후견인이 누가 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후견인이 되면 이 군이 성년이 될 때까지 재산을 관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노 여인이 후견인으로 지정한 사람은 자신이 살해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김 씨입니다.

김 씨는 20대 중반으로 미혼입니다. 어머니가 같고 아버지가 다른 이른바 ‘이부형제’를 후견인으로 지정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이번 취재에 도움을 준 김세은 변호사에 따르면 “이부형제라도 어머니가 법률상 혼인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직계 혈족으로서 후견인 자격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노 여인의 주장에 숨진 이 씨의 누나인 A씨 등 유족들은 분통이 터집니다. 일면식도 없는 20대 남성에게 조카를 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노 여인의 아들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면 평생 이 군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노 여인이 재판과정에서 한 말이 비수가 되어 꽂혔습니다.

유족들은 노 여인이 전 남편의 아들을 후견인으로 지정한 이유에 대해 “김 씨(전 남편 아들)도 살인자(노 여인)의 자식이고, 이 군(재혼 남편 아들)도 살인자(노 여인)의 자식이니 살인자의 자식끼리 똘똘 뭉쳐서 살게 해 달라”라고 말했다고 주장합니다. 한 마디로 전 남편의 아들이나 재혼 남편의 아들 모두 살인자인 자신의 아들이니 같이 살며 서로 의지하게 해달라는 다소 황당한 주장입니다.

이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한틀의 신태호 변호사는 딱한 사정에 사실상 무료로 변호를 맡았습니다. 신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유족들이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이를 하루빨리 친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A씨를 포함한 유족들은 재산은 포기하더라도 조카가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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