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침은 없고 분침이 1년에 한 번만 앞뒤로 움직이는 시계가 있습니다. 일명 '운명의 날 시계'라고 불리는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입니다. 지난 1947년 미 시카고대에서 발행하는 핵과학지에 처음 실리면서 핵전쟁으로 지구의 멸망을 알려주는 시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정이 되면 지구가 종말을 의미하는 이 시계는 처음 출발 당시 11시 53분으로 자정 7분 전이었습니다. 세계 핵무기 보유국들의 움직임과 핵실험 등을 감안해 시간을 결정하는데 지난 2007년부터는 기후변화도 인류 종말의 새로운 위협으로 포함됐습니다.
시간을 결정하는 지표인 핵과 기후변화 지표를 살펴보면 핵개발 능력 향상으로 전세계 핵탄두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가 핵폭탄 원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고 기후변화 지표인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고 공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며 극지방 빙하도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종말시계를 처음 만든 과학자들 가운데는 아인슈타인 등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많았습니다. '맨하탄프로젝트'는 암호명으로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유럽의 과학자들이 참여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을 만드는 연구였는데, 당시 이들은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 알라모스란 깊은 골짜기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지구를 멸망시킬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들이 그 위험성을 깨닫고 '지구종말시계'를 만들어 핵무기의 위험을 경고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 시계가 종말에 가장 가까웠을 때는 1953년 구 소련이 미국에 이어 수소폭탄 실험을 했을 때로 '자정 2분 전'이었습니다. 가장 멀었을 때는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때인 1991년으로 미러가 전략무기감축협상에 서명하면서 '자정 17분 전'이었습니다. 처음 시작당시 7분 전에 비해 10분이나 늦춰지면서 지난 70년 동안 지구가 가장 안전한 때로 기록된 해였습니다.
하지만 미러가 전략무기축소조약을 비준하지 않자 1995년 14분 전으로 당겨지는 등 이후 점점 시간이 자정에 다가갔습니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하면서 9분 전으로, 2002년 미국이 탄도미사일제한조약 탈퇴를 선언하면서 추가로 2분이 당겨졌고,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이란의 핵개발로 2007년 '자정 5분 전'까지 앞당겨졌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핵무기의 현대화에 따른 위협증대로 지난해 23시 57분 '자정 3분 전'까지 당겨졌는데 이는 지난 1984년이후 가장 종말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지구종말시계를 발표하는 미 원자력과학자회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자정 3분 전'을 유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 한 해도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별로 상황이 나아진 것도 없고 나빠진 것도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과학자회는 지난해 긍정적인 소식으로 이란 핵협상 타결과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나쁜 소식도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나쁜 소식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간 긴장이 과거 냉전시대 최악의 상황만큼 악화됐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를 둘러싼 미러간 대립이 계속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으로 탄소배출을 줄이기로 합의했지만 현재의 나쁜 추세를 돌리기엔 부족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북한에 대한 관심도 촉구했는데요 최근 북한의 4차 핵실험이 핵무기 비확산에 큰 위협이 되고 있지만 이란 핵처럼 북핵문제를 통제할 수단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폐쇄된 국가이긴 하지만 미국은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북한을 바른 길로 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충고했습니다.
4차 핵실험 뒤 대북 강경제재를 놓고 한미일과 중러가 이견을 보이는 현 상황을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과학자들은 지속적인 노력을 주문한 것입니다.
원자력과학자회는 종말시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더 되돌리기 위해서 쉽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에 투입되는 돈을 현저하게 줄이고 핵무기 해체작업에 다시 속도를 내야하며 북한의 핵위협을 줄이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확실히 줄여 지구온도를 2도 낮춰야 하며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첨단과학기술이 남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글로벌 위원회나 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도 충고했습니다. 이 모든 제안들은 전세계적인 협력없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과학자들은 현명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그것도 즉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는데요, '자정 3분 전'은 끔찍한 일이지만 그나마 3분이 남았고 그 3분을 더 늘릴 수 있다는 희망도 남아 있습니다.
이 '운명의 날 시계'가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길 전세계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람이 내년에는 이뤄지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