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박원순 시장이 하승창의 국회 입성을 막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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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새로운 정무부시장으로 하승창 싱크카페 대표를 임명했습니다. 전임 정무부시장인 임종석 전 의원이 총선 출마를 위해 자리를 내놓은 지 27일 만입니다.

차관급 대우를 받는 정무부시장은 국회, 시 의회 등 정치권과 언론과 업무를 협의하고 조정하는 자리입니다. 시장이 구상한 정책이 원활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시장의 의중을  명확히 꿰뚫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정치권이나 언론에도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1995년 민선 이후엔 이해찬 전 총리,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정두언 의원, 권영진 대구시장 같은 사람들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습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원하는 정치권 인사는 상당히 많습니다. 워낙 얻을 게 많기 때문이죠. 일단 차관급 대우도 대우지만, 서울시의 방대한 행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행정 경험을 얻는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큰 자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정무부시장직을 수행하면서 더해지는 오지랖과 인맥은 말 그대로 덤입니다.

그래서인지 임종석 전 부시장의 빈 자리를 희망하는 정치권 인사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현역 국회의원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이 최종 선택한 인물은 자신의 측근인 하승창 대표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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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창 신임 정무부시장

1961년생인 하승창 신임 정무부시장은 1990년대 시민운동계에 투신해 경실련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99년부터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으로 독립해 예산 감시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저도 기자 초년병 시절 기억 때문인지 '박원순=참여연대'처럼 '하승창'하면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먼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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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가 하 부시장이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원순 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그 다음해엔 안철수 대선후보 캠프에서도 주요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재선 캠프에 총괄기획 단장을 맡았고, 당선 뒤에는 서울정책박람회의 총감독을 맡는 등 박 시장이 시정을 이끌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박 시장과 같은 시기에 시민운동을 함께 했고, 박 시장이 정치권에 투신했을 때부터는 참모 역할을 담당했던 하 정무부시장이 박 시장의 측근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정무부시장이 시장의 정책 방향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선 하 정무부시장은 적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탁에는 몇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의외가 아닌 의외의 인사'라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 정무부시장이 이미 오는 4월13일 있을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는 점입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2011년부터 꾸준히 정치적 활동을 지속해왔고, 특히나 지금은 박원순(심지어 안철수까지)이라는 뒷배경을 갖고 있던 하 부시장에겐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박 시장이 왜 그를 불러들였을까요? 마침 박 시장과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박 시장은 짧게 한마디로 답했습니다.

박 시장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비례대표를 한다잖아요. 근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박 시장의 솔직한 발언에 다소 놀랐습니다. 박 시장의 의중을 좀 더 명확히 알고 싶은 마음에 박 시장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본 속사정은 이렇습니다. 

박 시장은 하 부시장이 비례대표로 국회 입성할 가능성에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개인의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야권의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하 부시장을 챙겨줄 여력이 없어 보인다"는 말을 평소에도 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박 시장의 고향과도 같은 시민운동계에서도 하 부시장을 좀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탁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 출신 정치인을 정무부시장으로 선택할 경우 총선 후보가 정해지고 난 다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 다음에 남겨진 사람을 정무부시장으로 내정해야 한다는 점은 박 시장 의중에는 맞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박 시장 측에서 하 부시장에게 정무부시장을 제안했고, 역시 국회 입성에 고심했던 하 부시장도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이번 발탁으로 하승창 부시장의 국회 입성은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미뤄졌습니다. 대신 박 시장 곁에서 정치권 인사라면 탐낼 만한 서울시정을 돌보며 정치적 오지랖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박 시장도 얻은 게 있어 보입니다. 비록 측근의 여의도 입성은 막았지만,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청년수당 등 굵직한 정책을 함께 추진할 든든한 조력자를 얻었습니다. 여기에 문-안-박 연대를 거부하고 야권의 독자 세력을 구축해 박 시장이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던 안철수 의원과의 긴밀한 소통 창구도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승창 정무부시장의 국회 입성은 좌절됐지만, 여전히 이번 총선에서 국회 입성을 노리는 박 시장의 측근들은 꽤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8명 정도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임종석 전 부시장, 권오중 전 비서실장은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해 활동 중이고, 기동민 전 정무부시장, 천준호 보좌관, 민병덕 변호사 등도 곧 지역을 정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청장과 오성규 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습니다. 

이미 하 부시장의 사례에서 보듯 박 시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 이른바 지분을 요구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는 만큼 각자의 지역에서 박 시장의 공언대로 각자도생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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