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millionaire'는 백만장자를 'billionaire'는 억만장자를 뜻합니다. 우리 돈으로 백만이나 십억을 뜻하는 게 아니라 달러로 말하는 것인만큼 백만장자는 1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수십 억대의 부자를 말하는 것이고, billion이 10억 달러인만큼 billionaire는 그 이상 심지어 '조만장자'라는 우스개 해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 한번에 단돈 2달러를 들여 이 '조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들썩이고 있습니다. 파워볼로 불리는 미국 복권 당첨금이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면서 복권 광풍이 휩쓸고 있는 것입니다.
1주일에 두 번 추첨하는 파워볼은 보통 1등 당첨금이 4천만 달러였는데, 지난해 11월 이후 1등이 나오지 않아 계속 이월돼 상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현재 당첨금은 15억 달러, 우리 돈 1조 8천억원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최고 당첨금은 2012년 발행된 '메가 밀리언'이라는 복권으로 6억 5천6백만 달러였으니까 역대 최고당첨금을 배이상 능가하는 규몹니다. 당첨금이 1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당첨금을 표시하는 파워볼 전광판도 정확한 금액을 표시하지 못한 채 최고 표시액인 9억9천9백만 달러로 적고 있습니다.
미국 방송들은 당첨금으로 자가용 비행기를 몇 대 살 수 있고, 최고급 자동차를 몇 천대 살 수 있으며, 심지어 미 프로농구 NBA구단도 살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런 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복권을 사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복권판매 용지가 동이 난 곳도 있고, 장사진을 이루는 판매소에 여러 명이 복권을 사서 당첨금을 나눠가지려는 복권계까지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1등 당첨 확률은 3억분의 1 정도로 극히 낮습니다. 1∼69까지인 흰색 볼 5개와 1∼26까지인 파워볼 하나를 모두 맞혀야 하는 확률입니다. 유성에 맞아 숨질 확률(70만분의 1)이나 번개에 맞아 숨질 확률(1만2,000분의 1)은 이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
한 방송에 출연한 통계학자는 1등 당첨확률을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매 1마일마다 복권을 산다고 할 경우, 지구에서 달을 611번 왕복할 만큼의 거리를 운전하면서 복권을 사야 잭팟을 터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구와 달을 왕복하는 거리가 80만킬로미터 정도니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복권판매소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당첨금이 올라갈수록 구매자가 늘면서 수수료 수익도 그만큼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권판매업자들은 복권 한장에 6%의 판매 수수료를 받습니다. 2달러짜리 복권을 만 장 팔았다면 1200달러가 수수료입니다.
복권 판매소마다 1등 당첨자가 자신의 가게에서 나오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고 당첨금이 걸린 복권을 판매했다면 홍보뿐 아니라 실익도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등 복권을 판 판매소는 추가로 3만~5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첨을 바라는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당첨자에게 주세를 물리는 미국의 35개 주정부도 마찬가집니다. 세율이 5%인 캔자스 주는 1등 당첨액에 대한 주세만 징수하면 부족한 예산 천만 달러의 몇 배를 충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천문학적인 당첨금을 받은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만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노력없이 번 돈인만큼 쉽게 탕진하거나 가족과 불화를 겪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2002년 12월 당시 가장 큰 금액인 3억 달러 파워볼에 당첨된 앤드루 휘태커의 경우 당첨금을 타서 돌아오는 길에 바로 음주운전으로 걸렸고, 몇 달뒤엔 차량 강도에게 55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뺏겼습니다. 돈을 나눠가진 가족들은 흥청망청 물 쓰듯 당첨금을 탕진했고, 손녀딸과 딸이 잇따라 마약중독으로 숨졌습니다. 본인도 음주운전과 마약 복용과 폭행 등으로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1988년 1억6200만달러를 받은 윌리엄 포스트는 여자친구가 소송을 제기해 당첨금 절반을 빼앗겼고, 동생이 청부살인극을 벌여 생명의 위협까지 당한 뒤 1년 만에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1966년 2천만 달러의 당첨금을 받은 제프리 댐피어는 2005년 처제와 그녀의 남자친구에 의해 납치 살해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1985년과 1986년 2년 연속 당첨돼 550만달러를 받은 이블린 애덤스는 돈을 나눠 달라고 요구하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다 모든 돈을 도박에 탕진하고 트레일러 차량에서 살고 있습니다.
높은 당첨금을 주는 파워볼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복권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결국은 주정부와 복권상품 제조업체, 복권판매소로 실제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혜택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의 의무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할 복지제도를 제공하는 것인데, 관련 재원을 복권의 주 고객층인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권 수익은 상당부분 연방 정부나 주정부의 교육과 복지 등에 투자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이란 일확천금을 내세우면서 부유층이 떠안아야할 세금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미국의 주정부나 연방정부, 언론들은 대체로 이런 사행성 게임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도 워싱턴에 인접한 메릴랜드주에는 요 몇 년사이 대규모 카지노가 연이어 문을 열고 있지만 세수확보를 위한 주정부의 고육책이라며 별다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탓인지 미국 언론들도 파워볼에 대한 비판적 접근보다는 대부분 흥미 위주로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평균 확률이 낮더라도 누군가는 1등에 당첨될 것이고, 그런 희망에 돈을 들여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려는 사람들은 당첨금이 높아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데, 어찌보면 이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현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