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권력으로부터의 ‘방송 독립’…‘공영 vs 민영’의 숙제


“식민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생 독립국들이 잇따라 생겨난 20세기,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 매체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신생 정부의 주요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신생국들은 당시 가장 대표적 방식이었던 영국식 공영방송 모델과 미국식 민영방송 모델 중 하나를 택했습니다.”

매일 방송을 하면서도 방송 제도 자체에 무지했던 제가 미국 텍사스로 연수를 온 뒤 수업에서 배운 내용 중 하나입니다. 이 분야를 전공하신 학자들도 많은데 제 짧은 수업 지식을 가지고 떠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현업에서 미쳐 느끼지 못했던 몇 가지 역설적 상황들이 있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 방송 민영화의 이유

신생 독립국과 2차 대전 후 프랑스를 비롯한 상당수 국가들은 국가의 정책적 목적 달성을 위해 State Owned, 즉 국영방송 시스템을 채택했습니다. 정부가 직접 방송을 장악하는 시스템으로 국가 개발 단계에서 어느 정도 유용성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Watch Dog’ (감시견)이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눈길을 끈 점은 정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방송을 독립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민영화가 추진됐다는 점입니다. 정치적 중립성 혹은 균형을 위해 민영화가 도입됐다는 얘기입니다. ‘민영 방송’ 하면 언제나 정치적 관점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우리 국회 상임위의 모습이 눈에 익은 저에게 이런 사실은 꽤나 역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채널 매각을 통해 국영 방송사들을 민영화했다. 민영화는 정치적 사안에 대한 정부의 통제 능력 감소, 방송 채널 출범과 향상을 위한 자본 획득, 그리고 강력한 다국적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 개방 등의 목적을 위해 추진됐다.

A number of countries have privatized national broadcasters by selling channels to private interests. Privatization has been pushed for a number of reasons, including reducing government’s ability to control political content, acquiring investment capital to start or improve channels, and opening investment opportunities to powerful international companies.

- World Television / Joseph D. Straubhaar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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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방송의 정치적 편향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사례가 바로 프랑스 방송의 민영화입니다. 1980년대 민영화의 문을 연 사람이 바로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미테랑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인 미테랑 대통령이 1980년대 새로운 민영 네트워크의 시장 진입을 허가함으로써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경쟁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선례이다.

A striking precedent came when French socialist President François Mitterrand began to liberalize competition in radio and television by allowing new private networks to enter the market in the 1908s.

- World Television / Joseph D. Straubhaar (pp.94~95)

가장 공영론자이어야 할 것 같은 그가 방송시장을 개방한 것은 정치적 이유였습니다. 집권자인 대통령임에도 공영방송 (아래 state enterprise라고 표현돼 있으나 국영방송체제가 끝난 이후임을 고려해 공영방송이라는 견해를 따랐습니다)의 정치적 중립을 믿지 못했다는 역설적 상황이 방송 시장 개방의 이유가 됐습니다. 공영방송이 가장 중립적일 수 있다는 전제와 함께 집권자가 방송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 가지 전제가 모두 흔들리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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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대통령은 주요 국가 방송 네트워크 중 하나인 TF-1을 민영화하기 시작했다. TF-1의 뉴스 보도가 정치적 통제를 받음으로 인해 자신이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받아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국영 기업인 TF-1의 뉴스 성향은 선거에서 자신이 물리쳤던 드골주의 정당의 영향 하에 있었다.

Mitterrand began privatizing TF-1, one of the major state networks, because he felt he had been politically disadvantaged by the political control of its newscasts when, as a state enterprise, its news orientation had been controlled by the Gaullist Party, prior to his defeat of them in an election.

- World Television / Joseph D. Straubhaar (p.95)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TF-1이 드골주의 정당에게 유리한 보도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민영화가 추진됐음에도, 정작 드골주의 정당 출신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민영화가 중단되기는커녕 같은 이유로, 즉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민영화가 계속 추진돼 완료됐다는 점입니다.

● 공영방송 성공의 조건

방송 시장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영국의 BBC 같은 공영방송 모델, 미국의 NBC, CBS 같은 민영방송 모델이 대표적입니다. 미국의 영향력이 컸던 남미 지역을 제외한 상당수 국가가 영국식 공영방송 제도를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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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치적 중립성 훼손 문제로 논란을 겪었고 지금도 겪는 중입니다. 제 수업을 맡은 교수는 공영 모델에 성공한 영국의 BBC 역시 정부와 적지 않은 갈등을 겪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한가지… 공영방송의 성공사례로 일본의 NHK를 포함시키는 듯했습니다.

일본 NHK의 경우 재난보도와 국제뉴스 등에서 상당한 신인도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정치적 논란에 대해서는 ‘글쎄’입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NHK는 정치적 비판 보도에 소극적입니다. 특히 집권 여당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수업시간 중에 언론인 출신의 한 일본 학생(대학원 수업인 관계로 그렇습니다)이 NHK의 신뢰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NHK가 정치 비평 보도에 적극적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NHK는 전통적으로 정치문제 보도에는 소극적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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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으로 돌아와서, 공영방송의 성공 조건으로 그 교수는 정부로부터의 재원 독립을 꼽았습니다. 재정적으로 종속될 경우 독립된 운영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NHK의 사례에서 보듯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 민영 방송에 대한 통제

그렇다면 민영방송은 어떨까요? 일부 국가에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편향성을 깨고자 등장한 민영방송은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게 제가 받은 수업내용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최근 동유럽의 사례들은 정부가 주파수 면허권을 통제함하고 (특히 정부의 통제를 받는 기업들의) 광고 통제, 사회간접자본의 제공, 새로운 상업방송 엘리트들의 권력 체제 편입 등을 통해 민영, 상업 방송의 형성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perience in Latin America, Asia, and, recently, Eastern Europe shows that national governments may maintain a great deal of power to shape private, commercial broadcasting by manipulating licensing of frequencies, by manipulating advertising (especially from government-controlled firms), by providing infrastructure, and by co-opting new commercial elites into power sharing.

- Morris & Waisbord, 2001

● 결국은 순리대로 간다

지금까지 제가 현장에서 본 것과 (비록 조금이나마) 학문적으로 배운 것들 사이에서 느꼈던 단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제가 언급한 것들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런 견해도 있구나 싶어 정리했습니다.

권력은 언제나 국민이 보는 걸 통제하고 싶어합니다. 정부와 언론, 특히 방송과의 관계가 복잡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국민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억지로 듣게 할 순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용문을 하나 더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특히 사상이나 종교 혹은 단순한 독재자의 의지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 일부 TV 방송 환경 하에서는 시청자들이 무엇을 보고자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가 단기적으로 방송 운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사고 방식이 종종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걸 보도록 하기 위해) 다른 볼거리를 없애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런 TV 운영 체제 하에서도 결국 사람들이 찾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자원이 투입하게 돼 있다. 자원은 무한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람시(1971)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지배적인 의견 일치로 이끄는 것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 통치자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런 만큼 시간이 흐르면, 심지어 독재자들까지도 종종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고, 읽고, 듣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Some television structures, particularly those strongly driven by an ideology, a religious orientation, or simply the will of a dictator, may not be influenced in the short run by whether people want to watch something or not. The idea is frequently to make them watch by eliminating alternatives. However, even these kinds of regimes for television will eventually direct resources toward programs that people will watch because resources are seldom un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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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msci(1971) insisted that pulling people into a hegemonic consensus is much more efficient for rulers than coercion, so over time, even dictators will often try to figure out how to deliver their message is ways that people will watch, read, or listen to.

- World Television / Joseph D. Straubhaar (pp.13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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