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응답하라 1980년대, 약 먹으면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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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육상 선수들의 도핑 스캔들이 세계 스포츠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당국의 묵인이나 조장 하에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혐의가 드러나 내년 8월 리우올림픽 출전이 대거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진화에 나섰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스포츠 관계자들이 도핑 혐의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내부 조사 수행을 위해 세계반도핑기구(WADA)에 충실히 협조하라”고 비탈리 무트코 스포츠부 장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금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 때문에 “도핑과 상관없는 선수들까지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신속하게 사태 해결에 뛰어든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상 선수들의 도핑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절정에 이르렀던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과 서방 진영은 이듬해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을 보이콧했습니다.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소련과 공산 진영은 1984년 LA 하계 올림픽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냉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특히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은 ‘메달=국력’이라는 모토 아래 엘리트 선수들을 국가 차원에서 집중 관리하고 육성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스테이트 아마추어리즘’(State Amateurism)입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습니다. 육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이 여자 800m(1분53초28)로, 1983년 7월 체코의 야르밀라 크라토치빌로바가 작성했습니다. 그녀는 한 달 뒤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400m에서도 처음으로 마의 48초대를 깨고 47초99로 우승했습니다. 경이적인 이 기록은 2년 뒤 동독의 한 선수에 의해 경신됐습니다. 전설적인 스프린터로 꼽히는 동독의 마리타 코흐는 1985년 10월, 호주 캔버라에서 열린 대회에서 47초60에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코흐의 질주 능력은 마치 남자 선수를 연상케 할만큼 폭발적이어서 다른 여자 선수들과의 격차는 엄청났습니다. 일부 육상 전문가들은 “이 기록이 2050년까지 깨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코흐가 이 기록을 세웠던 1985년 10월 여자 400m 한국 최고기록은 56초18이었습니다. 현재 이 종목 한국 최고 기록은 이윤경이 2003년에 수립한 53초67입니다. 코흐보다 6초 가량 뒤지는데 거리로 따지면 무려 50m나 됩니다.  

1987년과 1988년에는 전설적인 세계신기록이 쏟아진 해입니다. 여자 투포환에서 소련의 나탈랴 리소프스카야가 1987년 6월, 22.63m를 던지는 괴력을 선보였고, 두 달 뒤 불가리아의 스테프카 코스타디노바는 여자 높이뛰기에서 209cm를 뛰어넘었습니다. 다음 해인 1988년 7월, 여자 투원반에 출전한 동독의 가브리엘 레이니쉬는 76.80m를 던졌고 한 달 뒤에는 불가리아의 요르다나 돈 코바가 여자 100m 허들을 12초21만에 주파했습니다. 이 4개의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세계 최고기록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 선수들에 의해 작성됐습니다.

미국 출신으로 불멸의 세계 기록을 세운 선수는 ‘단거리 여왕’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입니다. 서울올림픽 석 달 전인 1988년 6월, 여자 100m에서 10초49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서울올림픽 여자 200m에서 21초24로 세계신을 작성하며 3관왕에 올랐습니다. 조이너의 100m, 200m 세계 최고기록은 27년 동안 깨지지 않은 것은 물론 근접조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100m, 200m, 400m, 800m 4개 종목의 세계 최고기록이 모두 1980년대에 세워진 뒤 현재까지 난공불락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한 세대가 지나도 깨지지 않을 기록을 세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비밀의 열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약물입니다. 1980년대 전설의 여자 육상 선수들 대부분이 금지약물 복용 의혹에 시달렸습니다. 물론 해당 선수들은 도핑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세월이 흐른 뒤 지도자와 동료들 사이에서 금지약물을 사용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동독의 마리타 코흐는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보다 다른 선수들이 더 많이 약을 먹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늘어놓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다른 선수보다 적게 먹었지만 먹기는 먹었다는 실토인 것입니다.

미국의 그리피스 조이너는 여자 선수로는 믿기 힘들만큼의 근육과 고무줄 같은 탄력을 지녔는데 1998년 만 38세의 나이에 자다가 급사해 약물 복용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육상황제’ 칼 루이스는 “미국 유명 스타 중에 금지약물을 사용하는 선수가 있는데 방법이 워낙 교묘해 들키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세계 육상계에서는 칼 루이스의 발언이 그리피스 조이너를 지목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도핑 테스트는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부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검사 방법과 기술에 허점이 많아 도핑 선수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검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남자 1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고도 도핑 테스트에서 ‘아나볼릭 스테이로이드’ 복용이 드러나 금메달이 박탈된 캐나다의 벤 존슨이 단적인 예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선수들은 도핑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했습니다. 혀를 내두를 만큼의 기발한 방법을 이용해 도핑 검사를 교묘히 피해 왔습니다.

이번에 터진 러시아 육상선수들의 도핑 스캔들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선수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 도핑 검사기관인 모스크바 실험실의 의사와 직원 등이 코치들과 공모에 관여했고 심지어 러시아 스포츠부가 이를 조장하고 묵인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비난이 거세지자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 실험실 소장 대행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도핑 검사 허가도 6개월 동안 잠정 중단했지만 이런 미봉책만으로 이번 파문을 수습하기에는 힘들어 보입니다. 

도핑 사실이 발각되면 선수 자격 박탈 등 엄청난 중징계가 불가피합니다. 자칫 영구 제명을 당할 지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도 금지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효과가 그만큼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먹으면 반드시 걸린다’는 인식을 선수들에게 분명히 심어줘야 합니다. 또 도핑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얼마나 신체에 유해한지, 적발됐을 경우 개인은 물론 국가의 명예가 얼마나 실추되는지에 대한 철저한 지도와 교육도 선행돼야 합니다. 리우올림픽을 약 9개월 앞둔 한국 체육계도 강 건너 불구경만 할 때가 아닙니다. 러시아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도핑 클린’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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