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인 1988년 10월 16일. 서울 서대문의 한 가정집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울려 퍼집니다. 곧이어 깨진 유리조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삶과 죽음이 뒤섞인 아비규환의 현장은 TV로 생생하게 전국에 생중계됐습니다. 이 남자는 왜 이런 비극의 주인공이 됐을까요?
사건의 발단은 8일 전으로 돌아갑니다. 서울 영등포 교도소에서 대전과 공주 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미결수 12명이 집단으로 탈주합니다. 대부분 징역 10년 이상 선고 받은 흉악범들이었습니다. 탈주범 중 한 명인 지강헌은 교도관의 권총을 빼앗은 상황. 이들은 곧바로 지명수배됐고, 사건 일주일 만에 7명은 자수하거나 붙잡혔습니다. 하지만, 지강헌을 포함한 5명은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그러던 16일 새벽, 한 주택에서 이들이 인질을 붙잡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옵니다. 그렇게 경찰과 인질범들의 대치극 시작됐습니다. 천여 명의 경찰들이 포위했지만 인질들의 안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습니다. 대치가 길어지던 때 지강헌과 인질범들은 억울함을 직접 전하겠다며 방송 생중계를 요구합니다. 가족들은 ‘자수를 하라’설득했지만 지강헌은 다른 선택을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살 순 없지만, 마지막은 내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리고 낮 12시, 지강헌은 탈주범 강영일에게 자수를 권유하며 인질과 함께 밖으로 내보냅니다. 집 안에 있던 2명의 탈주범은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혼자 남은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 테이프를 달라 요구합니다. 지강헌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중계 되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낭만적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이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이 외침을 끝으로 그는 자살을 시도합니다. 깨진 유리조각을 손에 쥔 그에게 경찰이 쏜 총알 2발이 날아듭니다.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도 ‘미안하다 정말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절대 다치지 않게 할 테니 조금만 참아라’는 이야기를 몇 번씩 되뇌기도 했다”(인질 피해자 고선숙)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습니다. 인질 6명 중 사망자나 부상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지강헌의 형량은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 총 17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벌을 받게 된 건 556만 원을 훔친 죄 때문이었습니다. 저지른 죄는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게 마땅한 일이지만, 556만원을 훔친 죄로 17년을 빼앗기는 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지강헌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TV로 생생하게 전해졌던 그의 울부짖음은 사람들에게 먹먹함을 안겼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유.전.무.죄’이 말을 세상에 외친 범죄자 지강헌이 죽은 지 27년이 지났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아직도 이 범죄자의 절규가 여전히 살아서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