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국의 노동절이다.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며칠 전부터 토머스 페레스 노동부 장관 얼굴이 TV와 인터넷에 자주 비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문 지상엔 노동절 연휴 할인 쇼핑에 나서라는 광고들이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유혹한다.
2년 전 노동절에 맥도널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잘 사는 나라 미국의 노동자를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날도 오늘도 누군가는 빵을 굽고 감자를 튀긴다. 노동절이라지만 매장이 문 닫고 하루 쉬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다. '맥잡(McJob)'이라 불리는 저임 노동에 처지가 불안정한 노동자들은 노동절이건 휴일이건 일하는 게 낫다. 노동절이라고 어디 가서 쇼핑을 즐길 처지도 아니다.
미국 경제가 나아지면서 역설적으로 맥도널드는 쓴맛을 보고 있다. 라틴계 패스트푸드의 약진 등 다른 요인도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불황을 먹고 사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2~3년 전 호황은 오간데 없다. 매출도 순익도 급락세다. 근래 맥도널드 종업원들의 임금인상 요구 시위가 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성과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런 매장 분위도 작용했을 것이다.
● 최저 임금 $7.25 대 $15
'맥잡'은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노동 현실의 시금석이다. 미 연방 기준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이를 시간당 15달러 두 배로 올리라는 요구가 미 전역에 팽배하다. 전면적으로 현실화된다면 패스트푸드 업계를 넘어 제조업에까지 파장이 클 것이다.
전체 패스트푸드 종업원들 평균 임금은 시간당 10.64달러라고 한다. ‘점심은 15%, 저녁은 18%’ 팁이 규범화된 사회에서 야속하게도 팁은 한 푼도 없다. 테이블 서비스 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한 언론인은 빅맥 햄버거 값에 17센트만 더 내면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이 시급 15달러를 받을 수 있다며 그럴 용의가 있는지 소비자들에게 묻고 있다.
미 연방 최저 임금은 6년째 제자리다. 최저 임금 인상 문제를 논의할 의회는 마비 상태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임금을 올리면 일자리만 줄어든다는 말만 몇 년 째 되풀이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부 소관인 연방 계약 근로자들에 한해서 시간당 최저 임금을 10.10달러로 올렸을 뿐이다.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 7.25달러, 지금의 고환율로 환산해도 우리 돈 8,700원 수준이다. 전철 타고 출퇴근하는 데만 10달러가 족히 든다. 대단치 않은 점심 역시 10달러가 훌쩍 넘는다. 맥도널드 햄버거만 매일 먹을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기도 만만치 않다. 빅맥 햄버거에 감자튀김, 탄산음료 세트를 시켰더니 7.29달러, 법정 최저임금보다 4센트 높다. 세금 10%까지 더하니 8.02 달러, 우리 돈 10,000원에 육박한다. 말이 ‘빅’ 맥이지 돌아서니 배가 고프다.
최저 임금 시간당 7.25달러는 대도시 물가를 따져보면 이미 의미 없는 숫자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인 가족이 최저 임금으로 살 수 있을까?" NBC 뉴스가 던진 질문이다. '어림도 없다'가 정답이다. 한 싱크탱크 조사 결과 4인 가족 연간 생활비는 65,000 달러에 이른다. 최저임금 1년 치를 다 합쳐도 15,000 달러가 채 되지 않으니 5만 달러가 부족하다.
대도시일수록 사정은 더 팍팍하다. 4인 가족이 수도 워싱턴 DC에서 사는데 연간 106,000 달러가 든다고 한다.
연방 의회가 법안을 베개 삼아 잠들어 있는 사이 대도시들이 들고 나선 이유다. 워싱턴 DC는 자체적으로 법정 최저 임금을 시간당 8.25달러에서 지난해 9.50달러로, 올해 10.50달러로 올렸다. 내년에 11.50달러까지 1달러 더 인상한 뒤 도시 소비자 물가지수(CPI)에 연동시키기로 했다. 미국 경제의 중심인 뉴욕 주는 패스트푸드 체인 노동자들의 최저 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올리라는 역사적인 권고안을 내놨다. 로스앤젤레스시도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9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기로 했다. (물론 숫자가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임금을 올리는 대신 다른 복지 혜택을 삭감할 수 있기 때문에 보상의 총 수준에 대해선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겠다.)
● 파이 나누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노동 장관을 다시 만났다. 앞서 언급한 토머스 페레스 장관이다. 2년 전 인터뷰 때보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벌써 노동절인데 많은 미국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실업률은 낮아졌다지만 임금은 제자리이고, 이것이 '뉴노멀(new normal)'인가요?"
페레스 장관은 손사래를 쳤다. 65개월 연속으로 일자리가 늘었다고 오바마 행정부의 성과를 내놨다. 하지만 패스트푸드 노동자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디트로이트에서 세 자녀를 둔 홈리스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번영을 함께 누리는 나라(a nation of shared prosperity)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페레스 장관은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 임금이 같은 곡선을 그리던 때가 있었다면서 언제부터인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시대가 됐다고 개탄했다. 파이를 함께 굽는 노동자들이 성과를 나누는 데서는 소외됐다는 것이다.
"불공평합니다. 레벨 플레잉 필드(level the playing field) -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블룸버그비즈니스가 최고경영자(CEO)와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큰 '불평등한 기업' 11개를 골랐다. 1등 기업은? 단연 맥도널드였다. 연간 노동자 평균임금이 11,324달러인데 비해 CEO에 대한 총 보상은 729만 달러에 달했다. 무려 644대 1이다. 2등 이하 기업들보다 CEO의 임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격차만큼은 압도적이다. 보건의료 기업들이 상위를 차지했고 금융 업체들도 빠지지 않았다.
주주자본주의 이념이 투영된 결과다. 수익을 많이 남긴 CEO는 최고의 보수를 받는다. 이들에게 노동자 임금은 되도록 줄여야 하는 비용의 한 항목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파이가 커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안은 있다. 기업 경영의 이해관계자(stakeholder) 모델이다. 유럽 국가들과 관련해 많이 듣던 이야기이지만 페레스 장관 역시 이 점을 빼놓지 않았다. 노사가 함께 일하고, 노동자들과 주주들, 소비자들까지 다 같이 선순환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한 모델 아니냐는 것이다.
매출도 떨어졌다는데 두드려 맞는 맥도널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빵 크기마저 줄여버린 맥도널드가 밉기도 하지만, 여전히 맥잡으로 상징되는 미국 경제 모델이 암울한 노동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