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인 가미카제입니다"…24살 청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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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미쓰야마 후미히로(光山文博) 조선인 탁경현입니다. 경남 사천에서 태어났지만 지독한 가난 때문에 6살 무렵 부모님과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에서도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지독했습니다. 판자촌에서 어렵게 약학전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천황의 나라 일본에서 망국의 조선인이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일본인 순사는 아버지의 생선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천황을 위한 방패가 돼야 한다며 제게 입대를 강요했습니다. 

제가 거부하자 순사는 가족들을 협박했습니다.

“장남 탁경현이 입대하지 않는다면 생선 가게를 더 이상 못 하게 하겠다.”

우리 가족이 살아남는 길은 제가 일본군으로 입대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입대를 반대하는 가족들에게 아버지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나가기 싫다며 울었습니다.

1943년 저는 가고시마현 지란 교육대에서 2년 동안 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그곳은 저와 같은 처지의 조선인 학도병들과 일본인 학도병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강제 징용된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내려진 임무는 가미카제(神風). ‘신의 바람’이란 뜻으로 낡은 전투기를 타고 연합군의 기지를 향해 온몸으로 돌격하는 ‘자살특공대’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일본군이 택한 마지막 승부였습니다.

출격 전날 밤 가족에게 편지 한 장 남기지 못했습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술을 마셨습니다.조국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노래로 고향 노래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1945년 5월 11일 출격의 날 마지막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불안과 눈물로 범벅이 된 특공대원들에게 사진사는 미소를 강요했습니다.

천황이 내려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천황 폐하 만세(てんのう へいか ばんざい)" 라고 외친 뒤 죽음의 전투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미군 주둔지를 향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제 나이 24살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을 선포한 날까지 10달 동안 수 천 명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이 연합군을 향해 온 몸을 던졌습니다. 가미카제 희생자는 3천 8백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조선인 희생자는 탁경현을 포함해 18명 뿐입니다.

일본은 지난해 2월 반인륜적인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들의 ‘유서’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했으나 심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또다시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본은 참혹한 대량살상의 역사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인정받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희생된 조선인들과 유족에게 사과부터 하기 바랍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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