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초등학생 '피겨신동' 울린 대한빙상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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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빙상경기연맹이 내년 1월부터 만 13세가 되지 않는 피겨선수는 실력에 관계없이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해 파장이 예상됩니다. 빙상연맹은 지난 17일 제4차 전체 이사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국가대표 선발 규정 개정안을 승인한 뒤 22일 연맹 홈페이지에 공식 게재했습니다.

이에 따라 현재 태릉빙상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초등학생 여자 싱글 국가대표 3총사는 올해 말 태릉선수촌을 떠나게 됐습니다. 3명 가운데 김예림과 임은수는 초등학교 6학년이고 막내인 유영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입니다. 특히 유영은 한국 스포츠 사상 모든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 국가대표(만 10세)로 발탁돼 화제를 모은 선수입니다. (5월21일 취재파일 참조) 

▶ [취재파일] 10살 '피겨 신동'은 1년짜리 국가대표?

초등학생 3총사가 빼어난 기량으로 언니들을 제치고 국가대표로 선발된 것은 지난 1월입니다. 그런데 태극마크를 달자마자 ‘13세 나이 제한설’이 나돌아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주니어 대회에 출전하려면 만13세가 넘어야 하기 때문에 13살이 되지 않는 선수는 아예 뽑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릉빙상장에서 공식 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지난 5월12일, 그런데 연맹은 일주일 뒤인 19일 기술위원회를 열어 다음 시즌부터는 만13세 이상의 피겨 선수에 한해 국가대표로 선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10일 뒤 상임이사회에서 국가대표 선발 규정 변경안을 승인한 뒤 이달 전체 이사회에 상정해 끝내 통과시켰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은 규정을 변경한 명분으로 ‘장기적 선수 육성 및 보호 차원에서 어린 선수들의 지나친 경쟁 및 부상으로부터 보호’를 내걸었습니다. 만약 13살 미만의 선수가 국가대표 선발 점수를 획득할 경우 별도의 육성 정책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연맹이 제시한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운영의 묘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빙상연맹의 결정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선수들은 당연히 초등학교 3총사입니다. 이들은 만 10살, 11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는 자부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고된 훈련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영 선수의 경우 최근 가장 어려운 기술인 트리플 악셀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등 기량이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맹의 규정 변경으로 이들은 앞으로 아무리 좋은 점수를 얻어도 국가대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동기 부여가 제대로 이뤄질 리가 없습니다. 태극마크를 단지 1년도 안 돼 다시 떼야 한다는 심리적 충격도 어린 소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큽니다.

훈련 환경의 변화는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국가대표 전용 시설인 태릉빙상장에서는 마음껏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지만 다른 빙상장에서는 일반 이용객이 너무 많아 점프를 제대로 할 수 없고 다른 사람과 부딪치게 될 걱정으로 스피드도 낼 수 없습니다. 태릉선수촌 의과학팀의 전문적인 치료도 받기 어렵습니다. 빙상연맹은 별도의 육성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국가대표에게 부여되는 혜택과는 여러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린 선수들의 지나친 경쟁 및 부상으로부터 보호’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정말 13살 미만의 어린 선수를 보호하려면 국가대표 선발전인 회장배 랭킹대회와 종합선수권 두 대회의 출전을 아예 금지시켜야 합니다. 선수가 출전을 하는 이상 최선을 다해 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나이 제한’으로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게 하면 훈련을 덜 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부상을 덜 당할 것이란 것은 너무 단순한 발상입니다.

이렇듯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나이 제한을 둔 것은 여러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11일 전에 내린 결정을 당장 취소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어 보입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미 국가대표로 훈련을 하고 있는 3명에 한해 유예 조항을 두는 것 밖에 없습니다. 즉 초등학생 3총사의 경우 내년 1월에도 국가대표에 다시 선발될 경우 ‘13세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그대로 국가대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두 가지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동계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국제대회에서 숱한 금메달을 따낸 긍정적인 면과 함께 내분, 파벌, 비리, 승부조작, 폭행, 무능 등 부정적 이미지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특히 피겨 행정을 두고는 유독 말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빙상계 일각에서는 ‘피겨연맹’을 아예 독립시키자는 목소리도 여러 차례 흘러나왔습니다. 김연아 이후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피겨의 살길이 과연 무엇인지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각성과 함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기대해봅니다. 

▶ [단독 취재파일] 황당한 피겨 심판, 더 황당한 빙상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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