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에서 근로자의 생명을 책임진 가설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3년 한 해 동안, 공사 가설물 붕괴나 추락으로 숨진 건설노동자만 349명에 달한다.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의 36.8%나 되는 숫자다. 왜 이런 사고는 줄지 않는 걸까. 수많은 건설노동자가 2015년 지금도, 매일 아침 목숨을 걸고 일터를 찾아야 하는 걸까.
근로자들이 공중에 매달려 일할 수 있게 만든 가설물을 '비계'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뼈대로 쓰이는 파이프 즉, '단관 비계용 강관'에 문제가 심각했다. 취재팀은 이달 초, 공사현장 비계용으로 널리 쓰이는 파이프 3개를 무작위 수거해 공인시험기관에서 성능 시험을 진행했다. 비계용으로 생산 허가된 제품은 세 가지 기계적 성질(인장강도와 항복점, 연신율) 모두 합격치를 웃돌아야만 한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불합격. 세 제품 모두 인장강도는 가까스로 합격치를 넘었지만, 연신율은 모두 미달이었다. 이 제품으로 검증을 받으려 했다면 통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취재 과정에서 두께가 0.5mm 얇은 파이프를 권하는 업자도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실험 결과, 인장강도조차 충족 못 하는 불량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판매업자들은 근로자와 자재가 오르내리는 가설물 용도로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파이프 1개당 많게는 4천 원을 아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상 전편 요약)
● 안전 걸린 가설재인데… '셀프 검사'가 최선이라는 당국
비계용 파이프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기에 이런 불량품이 생산, 납품되는 걸까. 고용노동부는 실태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 취재 결과, 가설물 품질 관리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고용부와 그 퇴직관료들이 이끌어 온 가설물 업자들의 이익단체. 그들이 가설물 품질 검증을 '업계 자율'로 처리해 온 지난 수년 동안, 안전은 내팽개쳐져 있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자율안전 확인 제도로 품질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견해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 담당자는 "자율적으로 (신고 해서) 성능을 확인받는 시스템이지 법에 규정이 있는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점이 눈에 띄었다. 업자 스스로 성능을 보여줄 파이프 표본를 직접 골라, 검증 서류를 제출한다는 거다. 업자 스스로 갖춘 성능 검증 서류를 안전보건공단이 심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거디. 고용부 담당자는 비계용 강관은 신고 확인 절차를 통과하면 문제가 없는 제품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자율 신고 확인 절차에 문제는 없을까. 안전보건공단이 심사하는 서류 가운데 핵심은 새 제품의 성능 '시험성적서'이다. 그런데 공단은 거의 모든 성능 검사에서 '한국가설협회'가 발급한 시험성적서를 사용한다. 실제 안전보건공단 담당자에게 안내를 받아봤다. "인증기준을 만족한다는 그 성적서를 주셔야 하세요. '한국가설협회'라는 곳에서 그걸 발행을 하고 있고요." 아예 협회를 발행처로 안내하고 있었다.
한국가설협회는 가설재 생산과 유통, 임대업자들이 모여 업계 발전을 도모한다며 1996년 설립한 사단법인이다.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회원이나 잠재적인 회원들의 생산품을 검증하는 구조라는 얘기다.
단관 비계용 강관은 수명이 반영구적이기 때문에, 심각한 하자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재사용이 허가되는 실정이다. 재사용 파이프의 인증 권한은 한국가설협회가 갖고 있다.
협회가 주도하는 재인증 검사 절차는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을까. 전직 검사 담당자는 "정확하게 하나하나 확실하게 확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라고 말했다. 검사 인력 10명이 모든 걸 꼼꼼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검사 대상이 말하는 재인증 실태는 문제가 심각했다. 수도권에서 비계용 강관을 만드는 한 업체 대표는 검사 실태를 이렇게 고백했다.
협회 소속 검사팀이 업체를 찾아오면, "아이 뭐 우리 팀장 오랜만이야. 뭐 해줄까? 빨리빨리 하자."라는 인사말을 건넨다고 한다. 그럼 검사팀 직원은 "아시죠? 그 품목별로 3개씩만 쫙 빼주세요." 그런데 이미 검사를 받는 쪽에선 '표본'이 준비돼 있다. 이 업체 대표는 말했다. "그럼 저는 이미 새 거 빼놨어요. 좋은 걸로." 그러면 "운반비 드릴 테니까 실어서 우리 연구소로 보내주세요. 보내면 끝이에요. 100% 합격하죠."
이렇다 보니 일부 업자는 시험 때만 멀쩡한 제품으로 검증을 받고, 실제 생산품은 엉터리로 만들고 있다. 한 번이라도 이런 부정이 드러난 적은 없을까. "지금 만드는 업체들이 한 번도 불량품을 만들어서 그 업체가 뭐 생산중지를 당했거나 또는 무슨 뭐 어떤 법적 처벌을 받았거나 이랬으면 안 할 텐데 제가 알기엔 거의 없습니다."
결국 '검증 따로 생산 따로' 해도 이걸 적발할 법적 근거가 없는 게 문제다. 공사현장에서 건설사는 가설물 설치 업자가 제출한 '자율신고확인서'에 100% 의존할 수밖에 없다. 기껏 이 확인서 발급에 증빙자료로 낸 '시험확인서'를 요구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얼마든지 성능을 부풀릴 수 있다. 실제 현장에 납품할 파이프를 생산하는 과정에는 감시의 손길이 사실상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업자는 심지어 국내 유력 철강업체의 제품을 사서 생산 허가를 받는 일도 있다고 털어놨다. 취재팀은 이런 제보까지 검증할 순 없었다. 하지만, 현 제도에선 얼마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당국의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 '선배 고양이'에 생선 맡겨놓은 고용노동부
취재팀은 협회 관리 책임이 있는 고용노동부가 최근 5년 동안 가설협회를 감사한 내용도 확인해 봤다. 한해가 멀다 하고 각종 비위가 적발됐다. 협회는 지난해엔, 소속 업체들의 부적격 가설재에 인증서를 남발하다 부적격 인증 적발 업무정지 적발됐다. 전문 인력이 아닌 사람이 안전인증을 담당하고 성능 기준이 부적합한 제품에 대해 안전인증서를 발급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는 가설재 안전인증 업무 2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다. 조립식 안전난간 등 9개 품목, 모두 134건의 부적합 제품에 엉터리 인증서가 발급된 걸로 조사됐다. 앞서 2012년엔 건설안전진단기관으로 지정받으려고, 있지도 않은 기술사 명의를 빌려 자격 요건을 꾸민 사실이, 올해 검찰 조사로 드러났다.
문제가 반복된 이유를 묻기 위해 가설협회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가설협회 직원은 "지금 뭐라고 회사에 답변드릴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재판 중이고 저희 직원들도 아는 사람이 잘 없다."라는 거였다. 가설협회 회장과 이사 등 간부 4명은 검찰에 구속돼, 1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취재팀이 확인한 문제점 외에도, 국비에서 지급된 수억대 연구비를 횡령한 혐의로, 선고를 앞두고 있다.
가설재 안전을 맡긴 협회 비리에, 고용노동부는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왔다. 지난달 이들을 구속한 검찰은 보도자료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추정했다. "협회 회장 등 임직원이 대부분 노동부, 산업안전공단 출신이므로 노동부, 고용노동청 담당자들이 협회에 대해 엄격한 감독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가설협회 회원들은 구속된 간부들이 업계 이익을 위해, 고용노동부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왔다고 믿고 있다. "역대 노동부 직원들이. 이사관이라든가 뭐 이런 사람들이 (가설협회) 회장을 맡아왔기 때문에 노동부하고의 유착관계 때문에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취재팀은 2011년 10월 31일부터 2013년 11년 20일까지, 2년 동안 협회 간부들이 고용부 담당 공무원들을 접대한 내용을 입수했다. 협회 간부들은 모두 13차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국이나 지방 고용노동지청장들을 만났다. 접대 장소는 주로 구속된 협회장의 단골 일식집이었다. 저녁 시간엔 1인당 최고 7~10만 원짜리 코스 요리와 여러 종류의 양주를 마실 수 있는 고급 식당이다. 식당 종업원은 협회장을 기억했다. 종업원은 그가 꽤 오래전부터 이 식당을 이용해 왔다고 말했다.
여러 차례 이런 접대에 동석한 가설협회 소속 회원과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고용노동부 주무 부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당시 모임의 성격을 그는 이렇게 정의했다.
"(고용노동부) 관련 산하 단체들이 국장이 바뀌거나 뭐 하면 인사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 자리였어요." 이런 식사 자리가 통상적인 자리였다면서도 그는, 인사를 '드린다'는 협회장에게, 오히려 고용부 공무원들이 '신고'를 하는 성격도 있었다고 말했다.
"인사라면 협회를 잘 부탁한다는 뭐 그런 뜻인가요?""그야 뭐 (가설협회) 협회 회장이 노동부의 1급 출신이니까, '저희 국장 진급해서 왔습니다. 새로 부서에 왔고 저희 주무부서니까…'" 그리고 그는 말을 아꼈다.
건설노동자와 자재가 항상 오르내리는 가설물. 그 재료인 가설재 생산 · 유통과정은 객관성이 한참 떨어진 검증 체계 속에 있다. 그런 사이 가설재 업계에선 이익을 위해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다. 최근 수년 동안 당국은 업계 자율만 외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고용노동부와 일선 고용노동지청의 감독 방침에도 큰 혼선이 생겼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생산 · 유통 체계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건, 철저한 현장 감독과 사후 조치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용노동부의 오락가락하는 지침 속에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가설재 업계의 도덕적 해이와 감독 당국 내부의 혼선은 다음 편에서 계속 전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