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FIFA 부패, 한국 떳떳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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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패 스캔들이 가라앉기는커녕 더 확대되는 분위기입니다. 사법 당국이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자 17년 동안 ‘전횡’을 일삼아 온 제프 블라터 회장이 오는 12월 물러나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지만 유럽의회는 당장 사퇴하라며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스위스 및 미국 사법 당국에 의해 부패 혐의로 기소된 인사는 FIFA 전·현직 간부 9명과 스포츠 마케팅사 관련자 등 모두 14명입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절로 듭니다. ‘피플스 게임’(People's game)로 불릴 만큼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의 총본산 FIFA는 왜 ‘비리의 온상’이 됐을까요? 무엇이 그들을 타락시켰을까요? 지금 거론되고 있는 카타르와 러시아에게만 그 죄를 돌릴 수 있을까요? 한국은 FIFA의 부패 문제에서 정말 떳떳할 수 있을까요? 

국제축구연맹의 부패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월드컵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월드컵을 지구촌 최대 스포츠 이벤트로 성장시킨 주역은 주앙 아벨란제 전 회장과 블라터 현 회장입니다. 아벨란제 회장 시절 2인자가 바로 블라터였습니다. 두 사람이 세계 축구 발전과 FIFA 재정 확충에 기여한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FIFA를 마피아처럼 운영해 ‘검은 돈’이 오가는 ‘비리집단’이란 달갑지 않은 이미지를 고착시킨 것도 이들의 책임이 분명합니다.

월드컵 유치를 둘러싸고 정당하지 못한 돈이 오고간다는 소문은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닙니다. 그 역사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섰던 한국 축구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다음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지 약 2개월 뒤인 2002년 9월6일 구평회 월드컵 유치위원장이 과거를 회상하며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 내용입니다.

“1994년 8월 월드컵 유치위원장에 부임한 후 한 달쯤 지났을 때 청와대를 방문했다. 서울대 동기이자 50년 친구인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다. YS에게 돈을 쓰면 이기든 지든 해볼 수 있는데 안 쓰면 안 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정부에게 유치 활동 자금 지원을 부탁한 것이다. 김 대통령은 한참을 생각한 뒤 정부의 체육기금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정부는 끝내 도와주지 않았다. 당시 월드컵 유치위 부위원장인 정몽준 의원은 자금 모금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친정인 LG 그룹에 요청해 40억 원을 확보했다. 그리고 삼성, 현대, 대우, 포철 등 5대 기업을 다니면서 200억 원을 모금했고 전경련을 통해 모은 것까지 합쳐  모두 330억 원의 유치 활동 자금을 마련했다.”

330억 원의 자금 중 일부는 물론 항공료, 숙식비, 홍보비 등 기본적인 활동비로 사용됐습니다. 하지만 330억 원 모두 영수증이 다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금을 쓰기는 썼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으로 사용됐는지 확인 불가능한, 다시 말해 영수증을 확보할 수 없는 돈이 상당수였다는 게 추후 국내 언론에 의해 보도됐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 정부 기금을 지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정부 기금을 사용하면 당연히 그 내역에 대해 추후 감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스포츠는 이보다 훨씬 전인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부정한 돈’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아왔습니다. 올림픽 중계권료를 압도적으로 많이 내는 미국 방송사는 칼 루이스와 벤 존슨의 남자 100m 세기의 대결을 비롯해 주요 육상 결승전 시간을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로 편성해달라고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요청했습니다.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밤 9시에서 11시, 즉 프라임타임 때 방송해 광고수익을 극대화시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의 프리모 네비올로 회장은 서울올림픽조직위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선수 경기력과 전통을 고려해 최소한 오후 3시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중계권료를 더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네비올로 회장에게 2,000만 달러나 되는 ‘뇌물’을 주고 경기 시간을 앞당겼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이 내용은 1992년 발간된 <올림픽의 귀족들>이란 책을 통해 폭로됐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기간에 미국 <애틀랜타 저널>도 관련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한국 스포츠계는 아직까지 이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IOC의 타락상은 1998년 마르크 호들러 스위스 IOC 위원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과정에서 일부 IOC 위원들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폭탄선언을 하면서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리처드 파운드 부위원장(캐나다)이 이끄는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3개월 동안 면밀한 조사가 진행됐고 조사 결과는 4명의 위원이 자진 사퇴하고 6명의 IOC 위원을 퇴출시키는 등 모두 24명에 대해 징계조치를 내리는 것으로 매듭지어졌습니다. 

‘한국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렸던 김운용 IOC 위원도 아들이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유치위원회측의 자금 지원을 받은 <유타 텔레커뮤니케이션스사>에 취업해 영주권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엄중 경고를 받았습니다. 김운용 위원은 당시 "사마란치 위원장의 후계 구도를 둘러싼 IOC 내부의 권력 암투에 의한 희생양"이라고 주장했지만 설득력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후 IOC는 ‘미스터 클린’으로 불린 자크 로게 위원장의 자정 노력과 현 토마스 바흐 위원장의 투명 행정 방침 덕분에 과거의 오명으로부터 상당히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IOC가 14년 전부터 자체 개혁에 나선 것과 대조적으로 FIFA는 오랫동안 IOC의 변신을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부패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이번에 된서리를 맞게 된 것입니다.

FIFA가 오늘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물론 블라터 회장과 집행부 인사들의 탐욕이 가장 큰 요인이 됐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개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역대 유치 신청국들도 일종의 ‘공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FIFA 내부에 '부정한 돈'에 대한 관대한 문화를 형성해 윤리 의식을 마비시키는 데 일조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가 FIFA를 비롯해 국제육상경기연맹, 국제수영연맹 등 거대 스포츠기구들이 더 투명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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