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북한 관계, 김정일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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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미묘합니다.

적어도 소련이 붕괴한 1991년 말 이후는 특히 그렇습니다.

소련의 붕괴를 즈음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은 한국과의 관계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사실상 북한을 멀리 했습니다.

한국과 소련은 1989년 무역사무소, 이듬해인 1990년 영사처를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교환 설치한 데 이어 1990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이 회담은 그해 9월 30일 양국간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이라는 결실을 낳았습니다.

이로 인해 소련과 북한간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당연지사.

한국과 소련은 이듬해인 1991년 상반기 정부간 협정을 맺어 한국이 소련에 경협차관 3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합의하기에 이릅니다.

정부는 비록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사임으로 소련이 공식 해체되면서 지급을 중단했지만 그해 5월부터 12월까지 현금차관 10억 달러와 소비재 차관 4억7천만 달러 등 총 14억7천만 달러를 제공했습니다.

러시아연방을 포함해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됐던 소련은 다음 해인 1992년 1월 1일, 12개 국가로 이뤄진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대체되면서 정식 해체됐습니다.

소련을 구성했던 나머지 3개국인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전해인 1991년 8월 일찌감치 따로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소련의 붕괴를 촉진시켰습니다.

이후 소련의 모든 대내외 업무를 승계한 러시아연방은 미국 등 서방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 등 굵직한 외부 문제와 거대 공기업 민영화, 반복되는 연금지급 지·정체 사태 등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숱한 내부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는 사실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습니다.

러시아의 안중에 북한은 아예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북한 역시 이런 러시아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이 다시 가까워지는 듯 했던 때는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연방보안국(FSB) 국장이 총리로 전격 발탁된 1999년 8월과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듬해 5월 이후부터입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직후인 2000년 7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평양을 전격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김정일로부터 미사일 시험 발사유예 약속을 받아내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러시아와 북한간 관계는 사실 그걸로 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김정일이 푸틴과의 합의가 농담이었다고 밝힘으로써 둘 사이에는 씻을 수 없는 앙금이 생겼습니다.

푸틴의 러시아는 국제사회내에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지렛대 역할을 제외하고 철저히 실용주의에 입각해 북한을 상대해왔습니다.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북한 '무상원조'라는 게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북한을 보는 러시아 사회의 시선도 냉엄해졌습니다.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을 계기로 러시아 역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북한과 다시 가까워지는 듯 했지만 둘 간의 관계에 다시 변수가 생겼습니다.

오는 8~10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로 했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전격 취소했기 때문입니다.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만 있을 뿐, 정확한 사정은 알려지지않고 있습니다.

어찌됐건 러시아로서는 다시 큰 '흥행거리'를 놓친 셈이 됐습니다.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 지난달 30일자 인터넷 판은 '김정은의 모스크바 방문 거부에 대한 진실한 이유가 밝혀지다'는 역설적인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북한, 특히 김정은에 대한 신랄한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냈습니다.

"전승 기념행사에 참여하는 외국 정상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의 숫자풀이 노래를 연상케 한다. 첫번째 사람은 올 수 없고 두번째 사람은 아프고 3번째 이는 오는 게 불가능하고 4번째는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식으로,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 "최근 평양에서 대량 숙청이 이뤄졌다는 보도를 감안하면 김정은은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서방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참석을 거부했고 다른 국가들은 추후 결정하기로 했으며 일본은 서방의 가치에 따라 불참을 선언했지만 김정은은 숙청이나 할 뿐, 아무 이유없이 불참하기로 했다는 비난인 셈입니다.

신문은 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의 불참 소식은 평양에서 북-러 정부간 협력위원회를 마치고 불과 며칠전 돌아온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극동개발부 장관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면서 "북한측은 상호이득이 되는 협력에는 전혀 준비가 안돼 있었으며 오로지 러시아측의 무상원조만 고집해 (정부간) 협상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이 소식통은 특히 "현재 주북한 대사를 포함한 러시아 외교관들 중에 김정은은 물론 그의 측근들조차 직접 접촉할 창구를 가진 사람은 없다"면서 "지금은 전임 '주체국가' 지도자 시절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문은 그러면서 "크렘린으로서는 '젊은 독재자'의 변덕이 오히려 잘된 일이다"면서 "그의 부재가 살인과 무례로 가득찬 손을 행사장 연단에서 공개적으로 잡아야 하는 불편을 참고 견뎌야했을 서방의 지도자들을 안심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썼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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