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박물관 가는 아베, 과거사 물타기?

알링턴 국립묘지도 방문…2013년 "야스쿠니와 알링턴 마찬가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전쟁 관련 추모시설을 잇따라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워싱턴 외교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부전(不戰)의 결의'를 강조하려는 의도이지만 정작 주변국에 가한 식민 지배와 침략 행위를 사과하지 않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어서 이중적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미국 워싱턴DC 정보지인 넬슨 리포트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7일 오후 워싱턴DC 도착 후 곧바로 알링턴 국립묘지와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다.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알링턴 국립묘지 참배를 전후해 2차 세계대전 기념비를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는 추측이 제기된다.

이는 외견상 과거 태평양 전쟁의 당사자였던 미국의 조야를 향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세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지려는 상징적 제스처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로 일관해온 아베 총리의 '이력'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행보의 이면에는 과거사를 교묘히 '물타기'하고 미국 내의 반(反) 아베 전선을 흐뜨리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선 알링턴 묘지 참배에는 아베 총리가 2013년 12월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에 따른 미국 내 비판론을 희석시키려는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같은 해 5월 미국 외교전문매체인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야스쿠니 신사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가 마찬가지라고 강변한 바 있다.

그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일본 지도자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홀로코스트 박물관 방문도 고도의 계산 하에 기획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미국 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 행보에 부정적인 유대계의 '환심'을 사보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있다.

유대계는 미국 뉴욕 퀸즈대학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일본 전쟁역사 강좌를 운영하고 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어 아베 정권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중동 순방 때에도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 해방 70년,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진정성이 결여된 행보라는 게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희생당한 주변국에는 침묵하면서도 일본과 직접 관련이 없는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는 곳만 찾아다니며 마치 '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아베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방문에는 '유대계 달래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위안부 문제와 난징대학살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권과 유대계를 이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2차 대전 당시 수 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와 일본 제국주의 군대가 행한 전쟁 범죄는 규모와 성격이 다르다는 인식을 은연 중 조장하려는 노림수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단순히 희생자 규모 등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위안부 운영과 난징대학살 등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버금가는 반인륜적 범죄를 물타기하려는 계략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아베 총리는 워싱턴 방문 기간 2차대전 기념비를 방문하거나 2차대전 참전용사들을 초청해 대화하는 프로그램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 같은 행보가 한국과 중국처럼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조야에 '그럴 듯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다른 나라 전쟁범죄 희생자에게는 머리를 숙이면서도 정작 이웃 국가에 가한 일본의 잘못에 대해서는 침묵하려는 행보인 것으로 보인다"며 "오는 29일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의미있는 과거사 언급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