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당한 예멘 독재자 살레의 '수상한' 행보


2012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쫓겨나기 전까지 예멘은 '살레의 나라'였다.

1990년 통일 전 북예멘 시절까지 치면 알리 압둘라 살레의 집권 기간은 무려 34년에 이른다.

퇴출당했지만 살레는 여전히 예멘 정세에서 '메인 플레이어'다.

같은 시대를 지냈던 이집트, 리비아의 철권 독재자는 자국의 아랍의 봄 열풍에 교도소에 갇히거나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살레는 여전히 건재하다.

살레는 실권한 다른 아랍국가의 독재자와 달리 대통령직을 내놓으면서 놀라운 협상력을 발휘, 새 정부가 재임중 비리에 대해 형사소추하지 않는다는 면책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34년간 쌓아 올린 두터운 지지층과 군부 곳곳에 심어진 그의 수하들을 무시할 수 없고 독재의 토대였던 국민의회당(GPC)은 예멘 의회의 79%를 차지한다.

예멘 의회는 2003년 총선 이후 2010년 예정됐던 총선이 정국 혼란으로 미뤄졌고, 2012년 설립된 과도 정부가 새 헌법을 마련한 뒤 지난해 초 선거를 해야 했지만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현재 예멘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시아파 반군 후티의 지난해 9월 수도 사나 점령도 살레의 개입이 배경이라는 게 정설이다.

살레와 공개적으로 협력 관계를 과시한 적은 없지만, 그야말로 지역 반정부 세력에 불과했던 후티가 무력으로 사나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살레 편에 선 정부군의 협조가 뒷받침됐다.

살레는 재임시 축재한 막대한 자금으로 부패한 정부군 장교들과 선이 닿아있다.

살레는 퇴출된 뒤 과도 정부를 흔들기 위해 후티와 정략적으로 손을 잡았다.

살레는 이란과 가까운 후티에 적대적이었으나 과도정부를 거쳐 평화적으로 정권이양이 되면 정치적 입지를 영영 회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 '과거의 적'과 협력했다.

이 때문에 현재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는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 세력과 무력 충돌하는 측은 반군 후티 뿐 아니라 살레에 충성하는 일부 정부군이다.

그가 과도 정부에 반기를 든 궁극적인 목적은 권좌 복귀이지만 자신이 직접 대통령직을 되찾는 게 아닌, 장남 아흐메드 알리 살레를 대통령으로 세우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흐메드는 살레 정권하에서 군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살레는 그에게 대통령직을 세습하려고 했지만 아랍의 봄으로 무산됐다.

아흐메드는 아버지 살레의 퇴출에도 2013년 요직인 아랍에미리트(UAE) 대사로 임명됐다가 최근 하디 대통령 정부에 의해 해임됐다.

노련한 모략가인 살레는 후티와 협력을 도모하면서도 끊임없이 살 길을 모색했다.

살레는 시아파이면서도 강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과 가깝게 지내면서 독재 정권을 유지했다.

이런 정치적 '자산'을 이용해 살레는 사우디와 후티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정부 소유 알아라비야 방송은 살레가 걸프지역 수니파 왕정 국가들에 특사를 수차례 보냈다고 15일 보도했다.

이 특사들은 살레의 경제력이 바닥났다면서 그의 가족이 안전하게 망명하는 방법을 타진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심지어 장남 아흐메드는 사우디 정부에 살레에 충성하는 5천명의 경찰력과 10만명에 이르는 군 병력을 동원해 반군 후티에 대항하는 쿠데타를 일으키겠다고 제안하면서 자신과 아버지 살레의 면책 특권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이 방송은 보도했다.

살레 측은 이 보도가 오보라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현지 소식통들은 "살레가 후티의 패배에 대비해 사우디 등과 수차례 접촉한 것은 사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전격 개시된 사우디의 예멘 반군 공습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살레는 돌연 1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제시한 휴전안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냈다.

20일엔 급기야 자신이 당수인 GPC의 웹사이트를 통해 "후티는 자체 군대와 권력을 보유한 세력으로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2012년 대통령을 사퇴한 뒤 군대나 경찰과도 관계가 끊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GPC는 예멘의 폭력사태를 멈추기 위해 유엔과 걸프 국가의 방향대로 대화에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의 정세를 둘러싸고 급변하는 정세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정치 기술'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 최종 목적은 자신과 가족의 권좌 복귀 또는 최소한의 안전 보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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