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먼저 흔드는 출판인들…국민들은 납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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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가치를 가격으로 재단할 수 없는 특수한 문화상품입니다.

적어도 출판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출판인들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독서문화 창달을 위한 도서시장 선진화에 불가피한 조치라며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을 요구해왔고, 지난해 11월 헌법이 보장하는 '시장의 원리'에 예외를 두는 도서정가제 전면 시행에 이르렀습니다.

시장 원리를 해치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또 하나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라며 비판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비판은 잦아들었고, 다수 국민들은 수긍하고 따랐습니다.

출판인들이 말하는 대로 출판 마케팅과 유통 구조가 개선돼 보다 양질의 도서들이 싼 가격에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가제 시행후 5개월이 돼가는 지금 정가제 합의를 주요하게 떠받들어야 할 대형출판사들이 앞다퉈 제도 취지를 훼손하는 기존의 할인 마케팅으로 회귀하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정가제가 결국 출판인들만 배불릴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하면서 정책 실패와 국민 불신 심화로 귀결되리란 우울한 전망이 나옵니다.

애초 제도 마련 때부터 불완전하고 허점이 많은 정책이라는 말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이후 정부와 출판계의 제도 홍보와 계도, 의지 부족을 드러낸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홈쇼핑 채널을 통한 도서 할인 판매에 나선 출판사는 민음사 계열 비룡소, 미래엔, 삼성출판사, 시공사 계열인 시공주니어, 김영사 계열 주니어김영사 등 주로 대형급에 속하는 출판사들입니다.

이같이 전집 할인 판매가 가능한 건 현행 도서정가제가 '세트도서 구성'에서 가격 책정의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초 정가제 규제 최종 합의 과정에서 출판업계는 세트도서 가격과 구성 도서 정가 합은 같아야 한다는 요구가 적지 않았으나 논의 과정에 반영되지 않았고, 차별적 구성 허용이 이 같은 편법 창구로 활용되는 현실입니다.

홈쇼핑 매체는 가격 할인을 장점으로 내세운 판매 창구입니다.

홈쇼핑이 유난히 발달한 우리나라 상거래 현실을 감안해야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홈쇼핑 창구를 통한 책 판매는 유례가 없다는 지적은 한번 돌이켜볼 대목입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책임연구원은 "책의 홈쇼핑 판매는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다"며 "정가제는 도서시장에서 가격할인이 아닌 새로운 마케팅을 권장하는 제도 취지를 담고 있어 대형 출판사들부터 철저하게 제도 취지를 지킬 필요가 있는데 기존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중견 단행본 출판사들 중심의 한국출판인회의 내에선 이 같은 대형출판사들의 '일탈'이 이미 예견된 수순이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관계자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특히 아동출판에서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지는 엄청난 혹한기여서 다들 곡소리를 내는 실정이었다"며 "구간 도서들이 풍부하고 할인판매에 길들여진 대형출판사들이 전집류 할인을 통해 곧 돌파구를 찾을 것이란 예측들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기들만 살겠다고 어렵게 이룬 합의 정신을 깨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출판계 자율규제 기구의 감시 인력은 태부족인 현실이지만, 정부의 지원도 태부족이어서 도서정가제 관철에 대한 의지 부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도서정가제가 시장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규제하는 기능은 출판계 자율기구인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맡고 있으나, 이 기구는 출판계 역량 부족으로 인해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속으로 운영되는 실정입니다.

출판유통심의위 관계자는 "애초 사재기 감시 기능 이외에 도서정가제 위반에 대한 감시와 심사 기능이 더해졌지만, 인력 충원이나 개편 등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동 인력이 태부족이어서 제대로 업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도서를 시장에 내놓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ISBN' 부여 요건을 강화하면 시장 내에서의 이 같은 할인 판매 편법을 손쉽게 차단할 수 있으나 이 권한을 가진 국립중앙도서관과 그 상위 부처인 문체부 사이에 정책협의가 부재한 것도 문제입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현재 시장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고, 문제점을 인정한다"며 "'ISBN' 부여 과정에서 개선점이 있는지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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