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칼럼] 전관예우, 왜 사라지지 않나?

전직 대법관 변호사 개업신고 반려 논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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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갑질 풍자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는 어마어마한 대형 로펌이 나온다. 이 로펌의 대표가 전직 총리를 고문으로 영입하는데, 고액 연봉을 받는 이 사람은 가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주는 것으로 자기 밥값을 다한다.

이런 얘기는 드라마를 넘어서서 이미 국민 상식이 되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법원과 검찰, 그리고 힘있는 부처의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퇴임 후 로펌에 들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받았는지 확인됐다. 여론은 격앙됐고, 대법관 출신의 한 총리 후보는 낙마했지만 전관예우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해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변호사 10명 중 9명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 대한변협, "전직 대법관 개업신고 반려, 무리인 것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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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성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를 반려해 전관예우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변협은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사건을 독식하는 전관예우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런 하자가 없는 개업신고를 반려하는 것은 변협의 월권이 분명하다. 법적 근거가 없고,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하며,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대한변협도 법률가 단체인데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변협의 한 고위관계자는 "알면서도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전관예우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이런 극약 처방을 불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처방으로 전관예우가 바뀌리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전관예우, 우리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그런데 왜 없어지지 않는가? 개탄하기보다는 차분한 현실 분석이 필요한 문제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전관예우를 지탱하고 있는가? 전관예우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 전관예우의 수혜자와 피해자

이 문제에 관해 최근 얘기를 나눈 현직 판사와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을 핵심적 수혜자로 꼽았다. 대형 로펌의 실력을 평가하자면 법률적 실무능력도 중요하지만 '로비 능력'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로펌의 로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전관예우 관행도 효과적인 도구가 된다.

이런 로펌의 영입 대상이 되는 법원과 검찰의 고위직 퇴직자들도 당연히 핵심 수혜자다. 하지만 로펌에 비해 수혜는 일시적이다. 전관예우를 받는 기간도 2년에서 1년, 다시 6개월로 짧아지고 있다.

대형 로펌, 또는 전관 변호사에게 거액을 지불할 수 있는 돈 많은 의뢰인들도 전관예우를 존속시키는 수혜자다. 이들은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회장님의 석방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전관예우는 이를 이용하려는 의뢰인과 이에 적극 부응하는 로펌, 그리고 전관 변호사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번성한다. 그리고 자신의 퇴임 후를 생각하는 현직 판검사들도 배경이 되어준다. 이들을 연결고리는 결국 돈이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돈 없는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입는다. 평소에는 나와 상관이 없는 듯하지만 가족이나 친지가 구속되거나 소송을 하게 되면 전관 변호사를 찾으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다는 통념 때문이다.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그냥 선임계나 상고이유서에 이름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3천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이걸 '도장값'이라고 한다는데, 결국 이 비용은 의뢰인이 내야 할 소송비용이다. 또한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자되면 불공평하고 무리한 결과가 나올 소지가 커진다. 돈 없는 사람은 결국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설움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일반 변호사들은 어떨까? 이들 가운데 전관예우를 받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그 소수 때문에 다수가 사건 수임의 기회를 잃게된다. 가뜩이나 변호사 숫자도 급증하고 있어서 힘든 마당이다. 변호사의 대다수가 전관예우의 피해자인 것이다.

대한변협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어찌보면 막무가내로 막아선 데는 이런 회원 다수의 절박한 이해관계도 반영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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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우 변호사

특히 하창우 대한변협회장은 연수원 출신으로서 30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전관예우의 폐해를  뼈저리게 체험했다고 한다. 이번 변협 집행부가 법원 검찰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면서까지 이례적으로 사법개혁에  선명한 행보를 보이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 법원의 변화를 외면하는 '전관 마케팅'

현직 판·검사들은 전관예우에 어떤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까? 자신도 퇴임 후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에 나름대로 협조해온 게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런 판검사들도 전관예우 관행을 지탱하는 잠재적 수혜자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부장판사는 법원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세대별로 차이가 있는데, 고참 판사일수록  전관예우 관행을 현실로 인정하고 자신도 수혜자가 될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가 잔존해있지만 젊은 법관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다르다고 한다. 평생법관제의 정착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판사들이 늘어나고 있고 전관예우 관행을 부끄럽게 여겨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것.

심지어 전관예우가 역효과가 나는 사례도 있다. 한 판사가 형사재판 피고인을 집행유예로 풀어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예전에 모시던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이 사건을 수임하는 바람에 결국 전관예우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실형을 선고했다는 것.

이렇게 법원에서 전관예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데 변호사 시장에서는 이를 일부러 외면하고 적극적으로 '전관 마케팅'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종의 거품이 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검찰이나 법원에 갈 일이 생기더라도 무조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허둥댈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서야

이런 법원의 변화를 보면 희망적인 면도 있지만 뿌리 깊은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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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옥

대한변협은 전직 대법관의 개업신고를 반려한 데 이어, 새로 대법관이 되려는 후보자에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를 받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서약서 서명은 거부했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퇴직 후 '사건 수임을 위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구두약속을 했다. 이 역시 변협의 월권이라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여하튼 사회적 문제 제기의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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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논설위원칼럼

하지만 이번 일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현 변협 집행부의 임기는 2년이다. 그 사이에 대법관이 퇴임하거나 새로 인사청문회를 하는 일이 또 있을까? 또한 대법원은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제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다 장기적인 대책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판.검사가 변호사로 개업하면 퇴직전 근무지의 사건을 1년 동안 맡지 못하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이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는 게 변호사들의 얘기다. 법을 피해 우회적으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실효적인 추가 입법이 필요하다. 판사출신인 서기호 의원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퇴임후 로펌 행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해놓고 있다.

물론 국회가 그런 법을 통과시키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지 모른다. 전관예우를 둘러싸고 이익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형성한 세력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 전관예우가 무엇이 문제인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공감대가 확산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 드라마를 그냥 허구로 웃어넘기지 못하고 전관예우의 현실을 떠올리는 씁쓸한 경험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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