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윤의 TV감수성] 유병재와 장그래는 어떻게 정글에서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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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궁금하다. 성실함을 밑천으로 차근차근 쌓아올린 스펙이 아닌, 남들과는 다른 차별성과 의외의 내공으로 폭풍우 한가운데 우뚝 선 그들이 말이다. tvN ‘미생’에서 한 때는 바둑 영재였지만 고졸 낙하산으로 ‘원 인터내셔널’에 입사한 장그래는 새하얀 미운오리새끼에서 순백의 백조로 살아남는다. 만화나 드라마 속 장그래가 있다면, 현실에는 유병재가 있다. 개그맨 같은 작가, 작가 같은 예능인…. 어떤 수식어를 달든 유병재는, 그냥 그 이름 자체가 가장 적확한 설명이다.

결과만 따지자는 게 아니다. 장그래와 유병재는 닮은 구석이 많다. 유병재는 키 162cm, 왜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콧수염, 그리고 개구쟁이 같은 스냅백은 만화 ‘개구쟁이 데니스’ 속 주인공을 닮았다. 외모만 따지면 마이너스도 없겠지만 플러스될 요인도 없다. 게다가 유병재는 공채 출신 희극인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군 제대 이후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서 미끄러졌다.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개성은 지상파 예능 공채와는 남달랐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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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유병재는 ‘니 여자친구’라는 UCC로 데뷔 아닌 데뷔를 한다. 그리고 tvN ‘SNL 코리아’ 예능작가로 방송계 입문했다. 아마 유일무이할 듯하다. 장그래에게 조력자 오과장(이성민 분)이 있다면, 유병재에게 그런 존재는 아마도 개그맨 유세윤이 아닐까. 어쩌다가 주류 개그맨이 됐지만 뼛속부터 B급 코미디에 대한 열망과 창작욕구가 남달랐던 유세윤은 유병재를 기꺼이 동료로 받아들였다. 오과장이 “빽하나 믿고 에스컬레이터 타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 지지하지 않아”라며 내치다가도 장그래를 “우리 애”로 인정했던 것처럼, 유세윤은 tvN ‘아트비디오’로 유병재를 세상에 데리고 나왔다.

페이크와 다큐를 혼합해 예능프로그램에 UUC적 마이너적 개성을 담아낸, ‘아트 비디오’는 시청률적인 성공보다, 마니아적 사랑을 받았다. 유병재와 유세윤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성이자 현 방송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B급 감성이다. 장그래와 오과장이 정글과도 같은 무역상사에서 정치싸움보다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마이웨이를 뚜벅뚜벅 걸었던 것처럼, 유병재가 선보인 B급 감성은 현재 그를 있게 한 아이덴티티(정체성) 그 자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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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코리아’의 ‘극한의 직업’은 세밀한 관찰력을 토대로 의외의 연기력을 선보인 점은 유병재가 시청자들에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후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무한도전’에 연이어 출연하며 유병재는 ‘대세’가 됐다.  여기에 생략된 게 있다. 신입사원들이 장그래가 위기상황마다 의외의 활약을 할 때 “운이 좋아서”라고 뒷말을 했지만, 그들은 장그래의 내공을 간과했다. 유병재도 마찬가지다. 유병재는 큰 기대 없이 바라보는 대중에 늘 허를 찌르는 깜짝 놀랄 감각을 가졌다. 여기서 감각은 내공과도 치환된다.

2012년 유병재가 페이스북에 쓴 글은 크게 회자됐다. 그는 “2012년 11월 '반평생 넘나드는 TV시청과 다년간의 연구로 드디어 공적영역에서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며, 이른바 ‘기자회견 용어’를 분석했다. 예를 들면, ‘많은 고민 끝에=까먹을 줄 알았더니’, ‘누구의 잘못을 떠나=내가 한 짓이다’, ‘경솔하게 행동한 점=치밀하지 못했던 점’ 등이다. 그의 분석력은 무릎을 탁 치게 했다. 또 유병재는 “젊음은 돈 주고 살 수 없어도 젊은이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보는 모양이다.”라며 ‘열정 페이’를 언급하거나, ‘식스맨’ 후보의 과열된 시청자 분위기에 대해서 “국무총리도 이렇게는 뽑히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며 촌철살인의 개그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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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재는 여전히 예능계 ‘미생’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충분히 화제성도 잡았고 tvN 새 금요 드라마 ‘초인시대’로 주인공도 꿰찼지만 말이다. 아마도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명해지더라도 쭉 ‘을의 설움’을 얘기할 것이다. 지질한 표정과 불안한 눈빛을 지으면서 속으로 고정관념을 한방에 넘길,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낄낄 거릴만한 수위의 내용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다.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유병재는 유병재다.”라고 말할 것이다. 훗날 우리는 유병재를 '을의 역습'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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