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80세 거장감독, 여배우에게 90도로 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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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도 드문 80세의 노장 임권택 감독은 영화 '화장'의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영화 속에서 투병생활로 죽어가는 아내(김호정)가 대소변조차 제대로 가리지 못해 욕실에서 남편(안성기)의 도움을 받는 그 장면입니다.

임 감독은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자 촬영을 일시 중단하고 김호정 씨를 불렀습니다. 101편의 영화를 찍은 거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여배우에게 힘들게 '나신'을 요구했습니다. 김호정 씨는 잠시 생각을 한 뒤 수락을 했고 촬영은 이어졌습니다. 열연 속에 욕실 장면이 끝나고, 임 감독은 김호정 씨에게 다가가 90도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임권택 감독은 김호정 씨와 함께한 나이트라인 초대석 인터뷰에서 이 장면을 자신이 지금까지 찍은 것 중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았습니다. 또 이 장면을 회상하면서 다시 한번 김호정 씨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다음은 나이트라인 초대석에서 임권택 감독과 배우 김호정 씨와 나눈 일문 일답입니다.

 Q : 먼저 감독님, 이번에 102번째 영화예요. 제목이 '화장', 김훈 작가의 원작인데 택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 제가 60년대에서부터 지금까지 감독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오랜 세월 우리의 역사나 또 문화 이런 것을 좀 큰 주제를 다루고 그러다 보니까 영화가 참 늘 무겁고 그랬는데요, 언젠가는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 이러다가 이 '화장'을 만나면서 그걸 시도했습니다.

 Q : 김호정 씨, 작품을 하면서 정말 언론에서 김호정 씨에 대해서 관심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영화 처음 제안받으실 때 거절하셨다고요?

 - 처음에는 임권택 감독님하고 영화를 찍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서 무조건 하겠다고 그랬는데, 배역이, 제 역할이 투병을 하다가 죽는 역할이에요. 그런데 그게 사실은 제 개인적으로 실제로 아팠던 기억이 있었고 이래서 이것을 고통을 다시 떠올려서 연기를 한다라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정하기가 좀 고민스러웠지만 그래도 이왕 들어온 거... 제가 늘 어렸을 때 인터뷰를 할 때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배우는 자기의 어떤 이러한 경험들을 무대나 아니면 연기를 통해서 이렇게 투영해서 보여줘야 되는데 그런데 이제 실제적으로 저한테 행동으로 옮길 그 순간이 된 거죠. 고심하다가 결정하고 막상 촬영할 때는 아주 담담하게 찍었습니다.

 Q :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정말 화제가 많이 됐어요. 삭발신부터 또 힘겨운 암 투병 환자 연기. 다 힘들었겠지만 어떤 부분이 실제 좀 힘드셨어요?

 - 김훈 작가의 그 소설을 보면 굉장히 그것이 적나라하게 아주 잘 표현이 돼 있어요. 진짜 그런 각오는 했죠. 촬영 장소에서 연기를 할 때보다는 매 순간 촬영장에 가서 오늘 하루를 정말 잘 있는 그대로 어떻게 표현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Q : 감독님, 김호정 씨의 욕실 장면을 찍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찍은 장면 중에 최고의 장면이다", 실제 그렇게 하셨어요?

 -  네. 그렇지요. 그럴 것이 이 신에서 제일 중요한 게 남편한테도 가리고 싶은 치부까지도 가릴 수 없을 만큼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이제 그런 데서 오는 미안함, 또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뭐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터져서 아주 짧은 시간에 드러내야 되는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찍어도 찍어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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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장

Q :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 촬영을 일단 중단을 하고 김호정 씨한테 처참한 그런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아름다운 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가지고 그래서 그걸 제의를 했죠. 본인이 2~3시간 서성거리고 머뭇거리고 하다가 이제 찍자고 해가지고 찍었어요. 그래도 100여 편이나 영화를 한 감독으로서 지금까지 찍은 어떤 한 컷보다도 아름답고 함축적이고.

Q : 김호정 씨, 정말 힘들게 그 한 컷을 위해서, 정말 말씀을 이렇게 하지만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가는데, 끝나고 나서 감독님한테 "정말 좋았다" 이런 얘기 들으니까 어떠셨어요?

-  그 장면이 저도 시나리오를 봤었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욕심이 난 장면이었고. 그래서 어쨌든 잘 끝나고 나왔는데 감독님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셔서 저한테 90도로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 영화를 이렇게 살려주시고 많이 아름답게 만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하는데 제가 정말 어쩔 줄을 모르겠는 거예요. 임권택 감독님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시니까. 저도 보고 좋았어요.

 Q : 그 장면 보면서 관객들도 이제 말씀을 듣고 그러면 더 유심히 공감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 이제 마지막으로 정말 평생을 앞장서서 후배들을 이끌면서 한국 영화를 이끌어 오셨는데, 이제 또 다음 작품, 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앞으로 계획 좀 알려주시죠.

- 좋은 소재를 만나서 혼신을 다해서 "아, 이만하면 완벽한 영화를 이제서 해내는구나" 하는 그런 작품을 한번 찍고 싶습니다.

Q : 김호정 씨도 끝으로 이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얘기 좀 해주시죠.

-  저는 참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하면서 참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거구나, 전 다시 제가 연기를 할 거리고 생각을 못 했었어요. 그리고 또 힘든 결정을 했는데 또 이렇게 좋게 찬사가 쏟아지니까 너무 감사드리고 늘 그냥 그동안 못했던 작품 수만큼 더 많이 여러분들에게 아주 가깝게 접근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 많이 보여 주시고요, 감독님, 건강하시고 103번째 104번째도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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