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동북아 미·중·일 각축…한국 외교 시험대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의 한복판에서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외교적 각축이 첨예해지고 있습니다.

역내 질서를 유지하는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주요국들의 전략적 이해가 곳곳에서 맞부딪히면서 갈등과 대립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는 흐름입니다.

미국은 역내 패권질서 유지와 경제적 이익확대를 목적으로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고, 중국은 적극적 대외노선을 천명하며 미국에 대항하는 세 과시에 나선 형국입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를 고리로 역내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집단자위권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보통국가화'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전략은 '아시아 재균형'이라는 키워드에 응축돼 있습니다.

중동에 쏠린 외교·국방 자산을 아시아로 다시 가져온다는 이 전략의 초점은 '패권유지'에 맞춰져 있습니다.

전후 70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질서를 주도해온 '상주세력'(resident power)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내고 경제적 이익을 확대해 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새롭게 '굴기'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 깔렸음은 물론입니다.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은 아시아 방문에 앞서 6일(현지시간)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한 강연을 통해 "미국은 태평양 세력"이라고 강조하면서 "아시아 재균형을 위해 미국도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균형 전략은 크게 안보질서와 경제질서 재편의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안보질서 재편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복원과 미·일·호주·인도로 이어지는 새로운 안보협력 축의 구축이 골자입니다.

우선 한·미·일 안보협력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려는 미국에 가장 긴요한 '도구'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올 상반기 아베 일본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을 잇달아 초청하는 것은 이 같은 삼각협력 축을 복원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이벤트라고 워싱턴DC 내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미국은 특히 카터 장관의 한·일 방문에 이어 이달 중순 워싱턴에서 외교·국방 분야의 한·미·일 고위관료 회담을 잇달아 개최할 예정입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을 포함해 미국이 주도하는 역내 미사일 방어(MD) 협력체제의 구축과 정보공유를 강화하는 것이 삼각 안보협력의 핵심적 의제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안보질서의 또 다른 축은 미·일 동맹을 확장해 호주·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거대한 역내 안보협력의 띠를 형성해 서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포위'하려는 구도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 호주는 현재 미국령 괌 연안에서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한 가운데 다국적 훈련인 '코프 노스'(Cope North 15)를 진행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경제질서 재편은 일본과 막판 협상을 진행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그 중심고리입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아·태 자유무역지역지대(FTAAP) 구축을 내세우며 역내 경제적 패권을 확장하려는 중국에 맞서 미국 주도의 새로운 경제권역을 창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의 이달 말 방미는 TPP 협상을 마무리 짓는 이벤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말 집권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국방력과 외교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강한 '중국 노선'을 걸어왔습니다.

시 주석은 최근 보아오 포럼에서 아시아의 운명공동체 구축에 중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하는가 하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를 본격화함으로써 이른바 세계를 향한 전략적 포부도 드러냈습니다.

중국은 최근 AIIB의 창립회원국으로 한국과 영국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을 포함해 50개국 이상을 가입하게 하는 성과를 올림으로써 주요 2개국(G-2) 대결에서 미국에 '판정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세를 몰아 중국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의 견제를 적극적으로 돌파하면서 안방인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이 미국의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중국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자국의 안보가 걸린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는 강경한 태도여서 이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한중 관계의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을 향해서도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며 대일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은 올해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을 맞아 오는 9월 열병식까지 계획 중인 상황이어서 일본의 전격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일 공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아직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냉랭했던 북중 관계의 개선 의지를 피력하면서 대북 영향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행보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전후 70주년인 올해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부차적 과제로 미룬 채 미·일 동맹 업그레이드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입니다.

미국을 끌어들임으로써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로 갈등하는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화' 행보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한국·중국의 '역사 예봉'을 피하려는 속내가 읽힙니다.

이런 배경 속에 일본은 아베 총리의 이달 말 미국 방문(4월26일∼5월3일)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일본 연립여당이 자위대의 대미 후방지원 범위를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안보법제 정비를 하기로 서둘러 합의한 것은 미국 방문에 앞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선물을 준 격이었습니다.

이는 아베 총리가 일본 현직 총리로는 처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는 기회를 얻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삼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함으로써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 수준을 한 단계 격상하는 등 미·일 관계를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 한다는 복안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미·일의 '밀월'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 한국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할지 모른다.

미·일 동맹 강화가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을 경우 미국의 사드 배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울러 미·일 간의 결속 강화는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문제에도 중대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한·미·일 공조 복원을 꾀하는 미국이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를 강하게 요구할 경우 군위안부 문제의 진전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와 관련한 아베의 역사인식 폭주를 견제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을 전망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안보상의 협력을 얻는 '대가'로 역사인식 문제에서 '그린카드'를 발급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한국 외교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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