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난민, 5년 만에 성추행 누명 벗은 사연


아프리카인 A씨 부친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습니다.

그 덕분에 A씨는 2010년 10월 '기독경찰 초청 문화탐방' 참가자 자격으로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 기회를 살려 난민 신청을 할 속셈이었습니다.

본국에서 17년 동안 경찰로 근무한 A씨는 은밀히 야당에 가입해 정부 탄압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다 정신 교육대에 끌려가 뜨거운 모래 위에 앉는 등 가혹 행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승진 길이 막히고 생명에 위협까지 느낀 A씨는 외국 망명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16개국 참전용사 자녀 중 경찰인 사람을 초청한 행사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문화탐방단에서 가까스로 이탈한 A씨는 서울 용산구 한 여인숙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A씨를 귀신같이 찾아냈습니다.

출국을 종용하는 경찰과 버티는 A씨의 대치 상황이 밤새 이어졌습니다.

이튿날 아침, 경찰은 가방을 둘러매고 숙소를 빠져나가려는 A씨를 별안간 체포했습니다.

A씨가 문화탐방 주최 측인 서울지방경찰청 경목실 소속 박 모(39·여)씨를 양손으로 끌어안아 추행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간인 신분의 박 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과 A씨를 설득하던 중이었습니다.

경찰은 A씨를 유치장에 가두고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다행히 A씨는 사안이 가볍다고 본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아 풀려났고, 유엔난민기구 조력을 받아 법무부에 난민 신청서를 낼 수 있었습니다.

A씨가 전과자가 된 사실을 안 것은 3년 뒤였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식명령으로 벌금형이 확정돼 있었던 것입니다.

A씨는 정식재판 청구권을 회복시킨 후 서울서부지법에서 다시 재판을 받았습니다.

1·2심은 "피해자 박씨 등이 A씨 신병을 확보해야 하는 입장에서 사실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어깨를 부딪쳤을 뿐이라는 A씨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A씨가 갑자기 경찰 관계자를 추행했다는 공소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도 최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A씨를 변호한 이일 변호사는 "난민 신청이 뭔지도 잘 모르는 경찰관들에게 사실상 밤새 구금당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써 체포되고 벌금형까지 받았다가 무죄를 확정받은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수사 당국이 난민 제도에 관한 무지나 인종적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당연한 결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A씨는 2012년 법무부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현재 가족과 함께 국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송 없이 난민으로 인정된 것은 그만큼 귀국시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컸다는 의미입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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