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정부발주 민자사업 대상 늘리고 절차 간소화

전문가들 "민자사업 세계적 추세…부작용 방지 필요"


정부가 다음 달에 발표할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은 민간 자본으로 재정의 한계를 극복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한국판 뉴딜'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딜이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었다면 한국판 뉴딜은 경기 활성화에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도적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에 대기업의 참여 유도, 사업 대상 시설 확대, 정부와 민간이 손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사업 방식, 사업 절차 간소화 등을 담아 민간투자 사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투자 사업이 세계적 추세이고 정부의 방안도 긍정적"이라면서도 "공공성의 훼손, 불필요한 공공재 양산에 따른 사회적 부담 등 부작용을 막을 장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 재정·통화·민간투자 트리플 성장엔진 정부가 투자 등 총수요 확대를 위해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재정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세수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결손이었고 올해도 결손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실제로 올해 1월 세수진도율은 사상 최대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던 지난해 1월보다 0.1%포인트 하락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3조원 이상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와 달리 민간의 유동성은 풍부한 편이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800조7천26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1%대로 떨어지면서 대규모 자금이 적당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자금이 민간투자 사업을 통해 실물경제로 흘러들어 온다면 고용과 소득이 늘어난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이어 정부가 지난 20일 발표한 10조원 규모의 '미니 부양책'에 민간투자까지 더해지면 경제 활성화엔진은 통화, 재정, 민간투자 등 세개로 늘어난다.

◇ 민간투자 규모 감소…위험 크고 장기화 우려에 대상도 제한 지난 1994년 시작된 민간투자 사업은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활성화 방안 마련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민간투자 사업 규모는 2007년 11조2천억원, 2008년 9조7천억원, 2009년 9조2천억원, 2010년 7조6천억원, 2011년 4조8천억원, 2012년 5조2천억원, 2013년 3조6천억원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규모는 4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감소 추세의 원인은 민간의 위험 부담, 사업의 장기화 우려, 사업 대상의 제한 등으로 분석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참여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려는 성향이 커지면서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 적격성 검토, 관계자들 간의 협의, 인·허가 등 제도와 사업절차가 복잡해 사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사업 참여 결정을 어렵게 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더구나 민간투자 사업 대상은 한정돼 있다.

민간투자는 현재 도로와 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시설과 도서관·미술관·체육관 등 문화시설, 국방·군사시설 등에만 허용된다.

오래됐거나 이전이 필요한 교도소, 세무서 등 공공청사에 대한 민간투자 수요가 있지만 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민간 자본을 활용할 수 없다.

◇ 대기업 참여 확대…제안에서 협약까지, 45일→30일로 단축 정부는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통해 이런 애로를 없애주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자금 여력이 큰 대기업의 민자사업 참여를 더 확대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민간투자사업을 위해 설립된 회사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의 '30%룰' 적용을 제외해달라는 업계의 건의를 검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30%룰'은 특정 회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30% 이상 소유하면 이 회사를 계열사로 편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의 계열사가 되면 계열사 간 출자, 채무보증 등 여러 부문에서 규제를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 계열사들은 자금 여력이 있어도 민간투자 사업에 30%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

사업 방식으로는 리스크 완화를 위해 최소 경비를 재정으로 보장해주되 초과 수익이 나면 민간과 공공이 공유하고 손실이 나도 민간투자자가 일정 정도 감수하는 손익공유형(BOA)이 검토되고 있다.

BOA가 도입되면 공공성은 크지만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항만, 철도, 환경 등에 대한 민간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BOA는 현재 활용되는 임대형 민자사업(BTL)과 수익형 민자사업(BTO)을 혼합한 것이다.

BTL은 민간이 공공시설을 건설해 소유권을 정부에 넘기면 정부가 업체에 시설 임대료와 운영비를 지급한다.

정부가 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민간 투자자는 부담이 없지만 반대로 정부는 부담이 있다.

BTO는 민간이 공공시설을 건설해 소유권을 정부에 넘기지만 운영권은 갖는다.

정부는 손실 부담이 없고 민간도 운영을 잘하면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다소 위험 부담이 있어 민간은 이 방식을 꺼린다.

또 민간투자 사업 대상도 SOC와 문화시설을 외에 중앙행정기관 소속기관 청사와 교도소 등 교정시설, 화장시설, 아동복지시설, 마을회관과 마을도서관 등 도시재생기반시설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사업 절차는 대폭 간소화할 예정이다.

현재 도로 사업의 경우 사업 제안부터 실시 협약 체결까지 45개월이 걸리고 철도사업은 44개월이 필요하다.

정부는 입찰 시작부터 최종 낙찰자 선정단계까지 발주청과 입찰자들이 쟁점을 협의해 해결하는 '경쟁적 협의 절차'를 도입해 사업 제안부터 실시 협약 체결까지 기간을 30일 내외로 줄일 방침이다.

◇ "중견·중소기업에도 참여 기회줘야" 경제 전문가들은 시중의 여유 자금을 민간투자로 끌어들여 경기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참여 기회 확대로 중소·중견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차별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의 참여를 위해 손실을 보전해주는 수준이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승헌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시중의 여유 자금을 사용하기 때문에 민간투자 사업 활성화 방안은 타당성이 있고 민자사업은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정부가 대기업의 민간투자 사업 참여 확대를 유도하는 것도 좋지만 중소 규모의 사업을 발굴해 중견·중소기업에도 기회를 줄 수 있는 대책을 상생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SOC 등에 비해 사업 규모가 적은 공공기관 청사나 교도소 등이 민자사업 대상에 포함되면 중견·중소기업의 기회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호철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재정의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공공부문에 민간의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는 방향은 바람직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민간투자 활성화에 너무 치중하면 기업의 이익만 신경쓰게돼 손실 보전 수준이 과도해질 수 있다"면서 "기업이 들어올 길은 넓혀주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기활성화에만 치중해 덮어놓고 민간투자 사업을 늘리면 불필요한 공공재를 양산해 사회적 낭비가 초래되고 유료 도로 등 공공재가 유료화돼 국민의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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