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다 발 빼는데…'밑빠진 독'에 물붓는 우리은행


기업의 부실화 현상이 올해 들어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은행의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은행 등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금융기관들이 회생 전망이 불투명한 기업에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금융권에 따르면 건설, 조선, 해운, 철강 등 4개 분야를 중심으로 올해 들어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올해의 '금융 7대 트렌드' 중 하나로 '기업구조조정 본격화'를 꼽으면서 대표적으로 이들 4개 업종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지언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낸 '최근 기업부분 건전성 분석을 통한 금융 안정성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는 이런 경고를 뒷받침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가중평균 부도확률은 2009년 0.08%에서 2014년 0.22%로 가파른 상승 추세를 보였으며, 부실기업(부도확률 0.4% 이상)의 비중도 2010년 7%에서 2014년 27%로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거시 통계로 볼 때도 기업의 부도 위험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빚은 많고 수익은 내지 못하는 부실기업이 속출할 경우 은행은 수익성과 건전성 측면에서 곧바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만 해도 4분기 들어 동부건설, 대한전선, 모뉴엘 등 3대 부실기업 악재만으로 은행권 전체로 1조 원이 넘는 관련 손실을 냈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부실기업 이슈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이달 들어 경남기업, 대한전선, 성동조선 등 부실기업에 대한 추가지원을 둘러싸고 채권단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실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둘러싸고 이해 관계자나 금융당국, 정치권의 압력이 개입하면서 금융사의 손실을 더욱 키울 우려가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국민은행이 STX조선해양 측에 320억 원의 보증채무 이행을 요구하며 강제집행을 예고하자 창원상공회의소와 안상수 창원시장이 은행 측에 상환유예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2010년부터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는 SPP조선의 경우 정부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곳과 아닌 곳과의 차이가 단적으로 드러난 예입니다.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무역보험공사, 서울보증보험 등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4개 채권기관은 SPP조선에 추가 지원금 4천850억 원을 지급하기로 가닥을 잡고 현재 후속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신한·스탠다드차타드·농협·외환 등 5개 시중은행은 추가자금을 지원에 동의할 수 없다며 채권단에서 발을 뺐습니다.

이들 5개 은행이 보유채권 7천억 원에 대한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청산가치에 맞게 보상을 받는데, 통상 청산가치가 매우 낮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입을 게 뻔합니다.

그런데도 '추가로 돈을 떼이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SPP조선에 대한 추가 지원 강행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우려의 시각을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한 채권은행의 관계자는 "SPP조선의 경우 지원을 계속할 경우 결국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될 게 뻔해 반대 입장을 고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계경제 여건과 중국기업 탓에 경쟁이 치열한 조선업계 구도를 봤을 때 추가지원을 하더라도 경영이 호전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은행의 경우 정책금융기관과 달리 민영화를 앞둔 시중은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시중은행 5곳이 손실은 물론 당국의 눈 밖에 날 것까지 감수하고서 추가지원을 거부했다면 '밑 빠진 독'이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의 추가지원 결정은 결과적으로 우리은행 민영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합리적인 경영판단이 아니라 정부 눈치를 보며 지원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시장은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기업가치 제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입니다.

임종룡 신임 금융위원장이 최근 우리은행의 신속한 매각을 위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공언한 것과 사실상 배치되는 행보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낮은 '좀비기업'에 일방적으로 금융지원이 계속된다면 경제 전반으로도 손해인 것은 물론, 나중에 더 큰 부실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일방적으로 금융지원을 지속한다면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문제가 된다"며 "그 돈을 더 나은 기업에 지원하는 게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윤석헌 교수는 "가혹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기업은 일찍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부담을 줄이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며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정부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지원 여부를 간섭해왔는데 이제는 시장에 의사결정 권한을 내려 보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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