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올려!" 日 임금인상 봇물…박탈감 커지는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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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간 임금협상을 흔히 '춘투(春鬪)'라고 하죠. 꽃피는 봄에 임금협상이 이뤄지고, 경우에 따라 격렬한 갈등이 빚어지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데요. 일본에서 온 말입니다.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회계연도 개념을 쓰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맘때 각 기업과 산별노조가 임금협상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제(18일)가 일본의 이른바 '춘투 집중회답일'이었습니다. 사측이 '기본급 인상안'을 노측에 일제히 제시하는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특히 자동차와 전기전자업체가 소속된 금속노조협의회 협상 결과에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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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월드리포트

▲ 일본 금속노협에 마련된 각 회사별 '기본급 인상 수준' 상황판
일본에서는 기본급 인상 수준을 '베이스업(ベ-スアップ)'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토요다 자동차 4,000엔, 혼다 3,400엔, 히타치 3,000엔 순으로 기본급 인상 결과가 정리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닛산 자동차가 5,000엔 인상을 발표하자 금속노협 분위기가 아주 환해지는 순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일손 부족 현상을 빚고 있는 '외식업계'도 임금인상에 동참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스카이락'이 과거 2배 수준인 기본급 4,300엔 인상안을 내놨고, 규동체인 '스키야'도 2,000엔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기업에 따라서는 젊은 사원들에게만 '기본급 인상'을 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습니다. 부장급 이상 관리자들은 인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데요. 이유는 두가집니다. 첫째는 20~30대 젊은 사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서 인재 유인책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 둘째는 젊은층의 급료를 올려야 소비확산으로 이어진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중장년층은 임금을 올려도 주택 론같은 부채 상환에 쓰기 때문에 소비확산과 무관하다는 겁니다.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두 사람은 노무라 증권의 부장과 3년차 직원인데, 왼쪽 부장은 임금 동결이고 오른쪽 3년차 사원은 기본급 7,000엔이 인상됐습니다. 사정을 알고 봐서 그런가요. 왠지 부장의 표정이 미묘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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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기업들은 아베노믹스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죠. 엔화약세와 돈풀기로 상징되는 아베노믹스 덕분에, 토요다나 닛산 같은 자동차 기업과 도시바, 파나소닉 같은 전기전자업체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가와 배당도 사상 최대 수준입니다. 적어도 자산가들에게는 아베노믹스가 축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 확대에 정권의 명운을 건 아베 총리는 '기본급 인상'을 줄기차게 주문해 왔습니다. 기업들이 혜택을 본 만큼, 임금인상으로 이른바 '낙수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겁니다. 연초부터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기업의 '협력'을 요청(?)했습니다. 대기업들의 '기본급 인상' 행렬은 이에 대한 화답입니다.

노동자들 임금 오르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근본적인 문제가 두 가지 남아 있습니다.

첫째는 기본급 인상 수준이 사상 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2% 안팎입니다. 그것도 대기업 인상률만 따졌을 때 그렇습니다. 최종적인 수치는 춘투가 모두 끝나야 확정되겠지만, 이 정도로 일본 정부가 기대하는 '소비촉진' '디플레 탈출'의 선순환이 일어날지는 의문입니다.

일본은행 구로다 총재는 2년내 '물가상승 2%'를 목표로 제시했지만, 아베노믹스 3년 차인 지금까지도 물가상승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이런 기본급 인상이 대기업 정규직에 한정돼 있다는 겁니다. 엔화약세가 수출대기업에게는 큰 혜택이지만, 일본 중소기업에게는 재앙 수준입니다. 엔화 약세로 원재료, 연료비 등 수입물가가 폭등했기 때문입니다.(그나마 유가가 폭락을 거듭했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버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중소기업의 기본급 인상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 노동자와 함께,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남성 21%, 여성 58%를 차지하는 파견근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대기업 임금인상 행렬이 말 그대로 '그림의 떡'입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40대 '개호시설 파견근로자(우리로 치면 노인요양병원이나 복지시설 근무자)'의 시급은 현재 1,350엔입니다. 개호시설 파견근로자는 노동강도가 가장 쎈 편이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기피 직종으로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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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월드리포트

10대 아들이 한 명  있는 이 파견근로자의 희망은 '시급 70엔 인상' 입니다. 하지만 파견회사와 개호시설 사측의 재계약 협상 결과는 '인상 전향적 검토'에 그쳤습니다. 개호시설 측은, 정부가 복지예산을 삭감한 상황에서 올려주고 싶어도 쉽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시급 70엔 인상' 요구에 "하루?(즉 일당 70엔?)"라고 반문하는 모습에, 괜스레 제가 울컥해지더군요.

한국에서도 시간당 5,580원인 2015년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임금을 충분히 올려줄 여력이 되는데도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하는 사업자들은 혼을 내야겠지만, 최저임금이 적용되는 사업장 자체가 대부분 여력이 안되는 영세 소규모라는 점을 부인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최저임금 올려야겠지만,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지 않을까요

대기업이 최대 실적을 내고, 배당을 2배~3배 늘려도, 대부분의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인 상황. 숫자로 나타나는 경제지표는 좋아지는데, 보통사람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현상. 파견사원, 비정규직을 극단적으로 양산하는 현재의 고용구조 자체를 바로잡지 않으면 해결 불가능합니다. 일본의 춘투와 박탈감을 느끼는 파견사원들을 보면서, 2015년 한국의 상황도 더 명확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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