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크림병합 1년, '러' 월드컵 위협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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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지 1년 되는 날입니다. 지난 해 3월 16일 우크라이나 사태가 커지면서 크림 반도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러시아 통합을 요구하는 투표를 강행하자, 러시아군이 곧바로 크림 반도에 진주한 뒤 이를 병합해 버렸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유럽연합은 불법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원상복구를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일 크림반도 병합 당시 핵무기 까지 준비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크림이 합병되기 직전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면서 “크림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토이며,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으므로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버려둘 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를 당하면서도 크림 반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지금 크림반도는 지난 해 투표일이었던 16일부터 축제가 시작됐다고 AFP통신은 전했습니다. 통신은 축제 기간 중 불꽃놀이와 콘서트들이 예정돼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키에프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우크라이나 일간지인 더 데이의 인기 기사는 “영웅들, 감사합니다.” ‘용감함에 대한 보상’ “아빠, 살아서 돌아오세요.”들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동부지역인 돈바스에서 1년간 싸운 뒤 귀환한 95 공정여단 관련기사이고, 두 번째 기사는 최전선까지 우편물 배달을 한 한 단체에 대해 키에프 대주교가 ‘자기희생과 사랑‘ 메달을 수여했다는 기사입니다. 세 번째는 전선에서 참호 속을 오가며 싸우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쓴 사연을 전했다는 기사입니다. 모두가 전쟁 속에서 이뤄지는 일들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사실상 빼앗겼고, 동부 지역의 전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2차 휴전에 들어갔지만 언제 또다시 전투가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1년 새 6천 여 명이 숨졌습니다. 민간인 피해도 커지고 있습니다. 독일 슈피겔지의 기자가 동부 지역의 중심인 도네츠크를 찾아 르포 기사를 썼습니다. 크리스티안 네프 기자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터무니없는 새로운 국경’이 생겼다고 표현했습니다. 항구도시인 마리우폴에서 120km 떨어진 도네츠크까지 가는 데 6군데의 검문소를 지났고, 그때마다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동행했던 트럭운전사는 지난번에는 6일 만에야 도네츠크에 도착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나마 이런 트럭들의 행렬이 도네츠크 시민들의 생필품을 조달하는 유일한 창구라는 것입니다. 도네츠크 시내의 슈퍼마켓은 텅텅 비었다고 APTN은 보도했습니다. 생필품 가격이 계속 올라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도네츠크의 레닌 광장에서는 반군 지지 세력들이 스탈린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면서 “승리는 우리의 것” “오마바는 야수”이라고 외치고 있었다고 네프 기자는 전했습니다. 서부 지역으로 오가는 버스는 운행되지만 동부의 시민들이 여행하려면 자체 통행증이 필요한 데, 발급받기가 어려워 서부 지역으로 이동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슈피겔지는 보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모두 상처를 남겼습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와 유가 하락 영향으로 경제적 손실이 큽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3월 1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7%에서 -3.5%내지 -4.0%로 크게 낮췄습니다. 갈수록 경제가 악화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유가 하락이 치명타가 됐는데, 러시아는 지난 6개월 간 기본 식료품 가격이 150% 폭등했고, 국가 수입도 당초 정부가 예상한 것 보다 450억 달러가 줄었다고 Oilprice.com은 보도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당연히 긴축을 고려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군비는 예외일 수밖에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더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 매체는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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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더 어렵습니다. 지난 겨울 가스가 부족해서 유럽이 대줬습니다. 1월 25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가 하루 3,150만 입방미터 씩 가스를 수입하던 것을 하루 4천만 입방미터를 수입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오던 가스가 뚝 끊어지면서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게다가 러시아는 지난 2013년 야누코비치 정권 당시 빌려줬던 차관 30억 달러에 대해 상환 연장을 거부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외환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권은 부패 문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부패 척결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적으로도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동부 지역 상공을 지나던 말레이지아 여객기가 격추돼 승객과 승무원 298명 전원이 숨지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일단 휴전은 발효되고 있지만 불안한 휴전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16일 북극 주둔 부대원 3만8천명에게 훈련을 명령했습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은 “군사적 안정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위협 때문에 우리의 군사적 능력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천명했습니다. 서방의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키에프 포스트는 군사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압력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내부에서 파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서방의 희망대로 동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을 끝내고, 크림 반도를 돌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냉전 종식 25년 만에 유럽이 광범위한 새로운 위협을 맞고 있다고 썼습니다. 여러 가지 거론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슬람 테러리즘, 사이버 보안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시아나 러시아는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데 유럽만 안보 관련 비용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쉽게 끝날 기미가 안 보이면서 단순히 지역적 분쟁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만일 러시아가 이번 기회에 육로를 통해 흑해로 바로 진출할 수 있는 마리우폴 항구를 손에 넣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 미국이 반발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동부지역에 대한 개입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을 털기도 어렵습니다. 푸틴의 논리대로 ‘러시아인들이 위협을 받으므로’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발트 3국, 나아가 과거 소련의 위성국들 모두가 같은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 극동지역의 부대들까지 훈련을 강화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간접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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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기 논설위원 대

지금으로서는 유럽연합의 중재대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부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확대해 주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최선의 길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 크림반도에 대한 주권 회복은 어려울 것입니다. 러시아로서도 동부지역을 또다시 병합할 경우, 드네푸르 강을 사이에 두고 유럽연합과 직접 국경을 맞대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당연히 유럽연합의 군비 증강을 가져올 것이고, 세계는 또다시 냉전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서방이든 러시아든 모두가 부담되는 상황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시점입니다.

포로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보이콧 하자고 촉구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오는 6월 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추가 제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LA 올림픽이 각각 정치적 보이콧으로 얼룩졌던 것처럼 러시아 월드컵이 위협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세계가 전면적인 냉전 상태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능한 한 빨리 해법을 찾아야 세계 평화가 유지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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