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연극 도전 박정수 "연습하다 속상해서 울어버리고 말았죠"


"TV에서 연기할 때는 내가 '못한다', '모자란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그런데 동선 연습을 하는데 사나흘을 매번 저만 틀리는 거에요. 너무 속이 상해서 어제 연습 땐 결국 어린애처럼 울어버렸지 모에요."

이달 연극 '다우트'(Doubt)로 데뷔 43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배우 박정수(62)의 말이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날 '사건'에 대해 얘기하며 "그렇게 좌절된 순간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2월 초부터 본격적인 대사 연습을 시작했고 20일이 조금 지나서부터 동선 연습에 들어갔어요. 대사를 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동선이 문제였어요. TV와는 전혀 달라요. 같이 하는 연극배우들은 '쉭쉭' 하는데 저 혼자 계속 틀리니까 자괴감이 느껴지고, 자존심도 너무 상하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어제는 그 말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이거 안 하면 안 돼요? 안 할래요!'. 어린애같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우는 제 모습에 저도 기가 막혀서 나중엔 웃음이 나왔고요."

'다우트'는 2004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연극으로, 1960년대 미국의 한 가톨릭 학교를 배경으로 인간의 확신과 의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지적인 심리극이다.

종교에 자유와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플린 신부', 원칙과 전통을 중시하는 원장 수녀 '엘로이셔스'의 대립이 이야기의 축이다.

여기서 박정수는 플린 신부와 학생의 미심쩍은 관계에 의심을 품고 플린 신부를 학교에서 몰아내려는 완고한 인물을 연기한다.

10년 전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비평가협회상 등을 휩쓴 작품으로, 2008년에는 메릴 스트리프(엘로이셔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해 골든글로브, 아카데미상에 후보작으로 올랐다.

한국에서는 2006년 극단 실험극장이 '국민배우' 김혜자를 '엘로이셔스'로 내세워 성공적으로 초연했다.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덤벼들었는데 제가 연극을 너무 쉽게 본 거죠. 후회했어요. 왜 진작 도전해보지 않았을까 하고요. 조금 더 일찍 했으면 지금보다 연기적으로도 성숙했을 테고, 어제처럼 운 일도 없었겠죠."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나 연기 자체는 자신이 있다.

하지만, 시선 처리와 동선은 물론 번역극이어서 대사도 드라마와는 많이 다른 것이 문제다.

"사실 많이 두려워요. 대사도 잘 안 외워지고요. 무엇보다 늘 상대 배우를 보고 연기하다가 허공을 보고 대사를 하려니 너무 어색하죠. 혹시 무대에서 관객들과 눈이 딱 마주쳤을 때 대사를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것이 가장 무섭습니다."

TV와 스크린에서 빛나는 베테랑 연기자라도 적어도 처음에는 평소의 기량을 발휘하리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연극 무대다.

젊은 연기자들이야 연기력이나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는 '실익'이 적지 않지만 이미 자신만의 연기세계를 구축한 예순의 배우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다.

이전에도 연극계에서 '러브콜'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그때마다 TV 일정 등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한 그였다.

사실 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고생이 뻔한 이 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에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는 이상하게 하고 싶었어요. 나를 한번 이겨보고 싶었죠. 다시 한번 나를 시험할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생각처럼 잘 안 되니까 속상할 뿐 재미는 있다"며 "TV와 다른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년이 돼서야 연기자로서의 내 일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연기는 내 운명이고, 천직이다. 여기서 명예롭게 퇴직하고 싶다"고 했다.

박정수는 1972년 꿈많은 대학 2학년 시절,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본 탤런트 시험에 덜컥 합격하면서 MBC 공채 5기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 첫해 MBC 연기대상 신인연기상까지 거머쥐며 화려하게 연기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절실히 원한 일은 아니었기에 3년 뒤 결혼과 함께 연기를 완전히 접고 전업주부의 삶을 택했다.

그리고 이혼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989년 14년 만에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견뎌왔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한 번의 시험대 앞에 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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