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 이주여성 혼인취소 판결 논란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25) 씨는 결혼 6개월 만인 2013년 초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혼인무효 판결을 받고 한국을 떠날 처지에 놓였습니다.

시아버지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13세 때 베트남에서 납치·성폭행을 당해 출산한 사실이 드러나 남편(40)이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법원이 '혼인 전 출산 사실을 고지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남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결혼 전 출산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아 혼인무효가 된 사례가 있었지만 성폭력 피해에 따른 출산을 알리지 않아 혼인무효가 된 건 A씨가 처음입니다.

수백만 원의 위자료까지 물게 된 A씨는 지난달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판결이 확정되면 혼인비자가 무효가 돼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A씨 사건과 관련해 오늘(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여성단체와 법률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실이 주관한 이 토론회에서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A씨의 출산이 심각한 인권침해범죄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피해자 보호라는 관점에서 A씨에게 출산경력을 적극적으로 밝힐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주여성은 친족성폭력으로 가정을 떠나면 체류가 문제가 돼 대처하기가 어렵다"라며 체계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한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가족법팀장 역시 "납치·강간 범죄 피해자인 A씨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말할 의무는 없다"라며 "고지 의무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인권 침해이며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고 꼬집었습니다.

이해응 서울시외국인명예부시장은 "피해자가 피고가 된 이번 소송에는 가난한 나라 출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등이 내재돼 있다"라며 "특히 이주여성은 언어소통과 체류의 문제로 가정폭력에 더욱 취약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밖에 'A씨가 결혼중개업자에게 출산 경력을 말한 것만으로 고지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과 관련해 국제중개결혼의 현실을 간과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재판부가 국제결혼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고, 충분한 통역이 제공되는가 등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그 결과가 여성차별과 인종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A씨의 남편 측은 사실 관계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A씨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남편 김 모 씨는 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재판이 있기 전까지 아내의 출산 사실을 전혀 몰랐고, 한국에 있는 아내의 베트남 지인들이 아내의 품행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많이 했다"라며 A씨의 주장을 다 믿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국제결혼피해센터 김형하 조사국장은 "A씨의 과거 성폭행 피해 등 사실 관계에 쟁점이 있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일부 참석자들은 'A씨가 아동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다 확인된 내용'이라며 '논점을 흐리는 발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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