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노벨 과학상 인프라는 100년 더 된 중소기업들"


"일본 노벨 과학상의 인프라는 100년 이상 이어 내려온 중소기업들입니다. 한국도 솜씨 있는 중소기업 100개 정도 골라서 첨단기술을 개발토록 지원하고 진흥하면 '노벨상 인프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왜 일본은 노벨 과학상에 강한가(책과 나무·161쪽·홍정국-최광학 공저)'라는 제목의 책을 최근 발간한 홍정국(68) 재일한국과학기술자협회 회장은 지난 20일 도쿄에서 한 연합뉴스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도호쿠(東北)대학에서 농학박사(토양미생물학) 학위를 딴 뒤 일본 IBM, 도쿄대(특임교수) 등에서 재직하며 일본 과학계 흐름을 꿰고 있는 재일 노(老) 학자의 명쾌한 결론이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최첨단 연구를 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중소기업들이 일본 과학의 '힘'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은 신규 기술 투자의 리스크를 피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리스크에 투자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과학기술 인프라로는 더 적합하다고 홍 회장은 주장했다.

1949년 '핵력의 이론에 의한 중간자 존재'를 예언한 공로로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1907∼1981)를 시작으로 작년 청색 발광다이오드(LED) 개발로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 메이조(名城)대 교수 등 3명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19명(미국국적 취득자 2명 포함)의 노벨 과학상(물리, 화학,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들 중 대표적으로 작년 물리학상을 받은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가 중소기업(니치아화학공업)에서 노벨상으로 연결된 핵심적인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홍 회장은 "100년 이상 한가지 업종을 계속해온 회사를 말하는 '시니세'(老鋪)가 일본에 7만∼8만개 있는데, 그 중 절반이 제조업"이라며 "이들이 핵심 기술을 몇백년간 유지해왔지만 똑같은 상품만 만든 것이 아니라 원천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기업들은 독자적 기술을 갖고 남들이 못하는 실험을 한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뒷받침하는 사회 풍조가 일본에 있다"고 부연했다.

에도(江戶)시대(1603∼1867)부터 장인(匠人)을 존중하는 문화와 전문기술을 가진 이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홍 회장은 또 도쿄대, 교토(京都)대, 나고야(名古屋)대, 도호쿠대 등 주요 국립 대학을 중심으로 '노벨상급' 연구실을 유지해온 전통과 이들 연구실에 속한 학자들이 일본 안팎에서 맺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일본 노벨 과학상 양산의 배경 중 하나로 꼽았다.

관(官·정부)·학(學·대학)·산(産·기업), 대학과 학회, 대기업과 중소기업, 도시와 지방의 유기적인 연계 속에 지식이 흐를 수 있는 구조가 일본에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고 명문인 도쿄대의 인재가 지방대로 이동하고, 지방대의 인재가 도쿄대로 이동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라고 홍 회장은 소개했다.

또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유신 때부터 국책으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선진 주요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동시에 해외에서 저명과학자를 초빙하는 등 세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해온 것도 노벨 과학상 양산의 원동력이 됐다고 홍 회장은 분석했다.

더불어 홍 회장은 "노벨상은 노벨상 수상자 가까운 곳에서 나온다"며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노벨상급' 연구실에 있는 한인 과학자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과학자 연구실에서 일하는 재외동포 과학자들과의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홍 회장은 한국 정부를 향해, "과학 연구와 관련한 예산을 투자할 때 금액보다는 '계속성'을 중시하고, 국책 연구기관 등이 연구자를 고용할 때 장기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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