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에 들킬라" 쉬쉬하며 설 차례 지낸 80년


귀성·귀경객으로 꽉 막힌 도로와 여행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공항은 어느덧 익숙한 설연휴 풍경이 됐지만 음력설이 공식적인 '설'의 지위를 되찾고 연휴가 생긴 지는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음력설을 쇠던 우리나라에서 양력 1월 1일이 공식 설이 된 것은 을미개혁 후 1896년부터다.

이때도 일반인들은 여전히 음력 정월 초하루에 설을 쇘다.

일제강점기에는 공권력이 음력설을 쇠지 못하도록 억압한 것은 물론, 물리력도 행사했다.

설에 관청·학교의 조퇴를 금지하고, 흰옷을 입고 세배를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을 채운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는 등 치졸한 박해도 가했다.

'설 박해'는 광복 후에도 '이중과세(二重過歲) 방지' 명목으로 지속됐다.

정부는 1949년 양력설(1.1∼3)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했다.

1981년 12월 16일자 '신정단일과세(新正單一過歲)의 정착화를 위한 지시'라는 제목의 국무총리 지시사항을 보면 1980년대 초반까지 정부가 음력설 억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서에는 모든 공직자는 음력설을 쇠지 말고 각 행정기관은 구정 관련 행정지원을 삼가라는 등의 지시 사항이 담겼다.

아울러 신정 귀성열차 요금할인과 신정에 앞선 시중자금 공급 등 양력설을 뿌리 내리기 위한 행정대책을 수립하라고 돼 있다.

그러나 국민 다수는 여전히 음력설을 명절로 여겼으며, 음력설이 휴일이 아닌데도 고향으로 가는 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정부의 지시와 달리 음력설 아침에 서둘러 차례를 드린 뒤 직장으로 출근하는 공무원도 적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이러한 국민정서에 굴복 1985년 음력설 당일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공휴일로 지정했다.

4년 후인 1989년에는 음력설이 '설'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공휴일도 사흘로 확대됐다.

국가기록원은 설이 공휴일로 지정된 지 30년을 맞아 '이달의 기록' 주제를 '민족의 대명절, 설날의 풍경'으로 정하고, 17일부터 관련 기록물을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 게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에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기록물은 ▲ 파월장병의 세배('68) 등 동영상 8건 ▲ 새해맞이 문화재 환경 대청소('85) 등 사진 24건 ▲ 음력 과세방지에 관한 건 등 공문서 8건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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