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성역' 논란, 재계의 방어논리는?…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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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 성역 불가론'이 재계와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없는 복지' 공약을 둘러싸고 연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과세 형평성을 고려해 '법인세 역시 성역이 될 수 없다'는 논리가 단연 논쟁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경환 경제팀은 복지 구조조정으로 증세 논란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증세보다 무상복지를 손보는 쪽으로의 기류 변화도 읽힙니다.

그러나 연말정산 파동으로 단단히 뿔이 난 여론을 쉽게 잠재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 보입니다.

여권 내에서도 온도차가 있긴 하지만, '이제 법인세를 건드리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형국이 됐습니다.

재계는 최대한 정밀한 논리로 법인세 인상 압박에 저지선을 치겠다는 전략입니다.

장기화하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엔저, 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등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영환경에서 세금 압박이 가해지면 버텨날 기업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절박함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초기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내린 이후에도 투자와 고용은 늘지 않고 사내유보금만 급증했다는 통계 등 불리한 '팩트'가 여전히 많아 재계의 방어능력이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옵니다.

법인세를 둘러싼 논쟁이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면 반기업 정서를 키울 수 있다는 점도 걱정입니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4%)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35%), 일본(25.5%) 등 주요 선진국보다는 낮습니다.

재계에서는 대기업 최저한세율(세액공제를 받더라도 내야 하는 법인세 비중)을 14%에서 17% 선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 효과가 상쇄됐다고 주장합니다.

OECD 34개 회원국 중에는 최근 14개 국가가 법인세를 인하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비슷한 숫자의 국가가 법인세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올렸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홍성일 금융조세팀장은 "법인세 인상을 논의하기엔 현재의 경제 상황과 기업 여건이 녹록지 않다.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수년간 떨어지고 있다"면서 "세금을 올리는 게 세수 확충 때문인데 법인세 인상은 오히려 세수를 줄이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법인세율이 28%이던 2001년 법인세수가 7조8천억 원이었지만, 법인세율이 22%로 낮아진 2012년에는 법인세수가 36조 원대로 늘었다고 합니다.

물론 기업이 벌어들인 '파이'가 커진 면이 있지만, 세율과 세수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기업의 주장입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법인세가 오르면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기업이 분명히 나타난다"며 "일부 기업이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니까 법인세 인상 여지가 있어 보이지만, 기업은 법인세 인상을 규제신호로 받아들여 투자·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선 법인세 인하의 과실을 대기업이 독점했다는 반론을 폅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 인상의 여지가 있다. 중소기업은 몰라도 대기업은 여력이 있다"면서 "MB 정부에서 법인세를 깎아준 규모가 얼추 30조 원 안팎이 되는데 그중 75% 정도를 대기업이 가져갔다는 추정치도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하면 그 혜택을 수출 대기업이 대부분 가져가고, 교육재정을 투입해도 우수한 인력을 고용한 대기업이 혜택을 보지만, 정작 재정지출의 혜택에 비례한 세금을 내고 있느냐는 지적인 셈입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뒤에서 '팔 비틀기'를 하지 말고 세금을 올리되 내수를 확 살려달라는 주문도 내놓습니다.

재계의 한 고위 인사는 "정부가 기업소득환류세처럼 복잡한 세제를 들이밀지 말고 차라리 법인세를 올려라. 대신 법인세를 가져다 내수 확대에 써라. 내수시장을 무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기업은 돈만 벌 수 있게 해주면 빌려서라도 투자를 한다. 실질과 액면을 일치시키는 게 효과적"이라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법인세 공방에서 기업을 공격하는 포인트 중 하나는 대기업들의 과다한 사내유보금입니다.

기업평가기관에 따르면 법인세 최고세율이 내린 2008년부터 5년간 20대 기업 사내유보금이 322조 원에서 589조 원으로 80% 이상 늘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현재 10대 그룹 83개 상장사의 사내유보금 규모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537조 원에 달하고 6개월 만에 6% 증가했다는 통계도 제시된 적이 있습니다.

전경련은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총자산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불과 0.09%로 미국(0.23%), 일본(0.21%)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반박합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 경제연구실장은 기업들의 현금 쌓아두기에 대해 "전혀 맞지 않는 얘기다. 요즘같은 저금리 시대에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면 그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면서 "그동안 지적하던 게 배당이냐 유보냐 두 가지였다. 배당을 안하면 마치 현금을 쌓아두는 것처럼 와전되고 거기서 오해가 생겼다. 투자를 하더라도 장부에는 배당이 아니니 유보로 표시된다. 기계설비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는 투자를 하는데 유보로 잡히니 외부에서는 투자를 안한다고 지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반대로 "기업 내부에 쌓아놓은 현금을 퍼내게 하는 방법으로 차라리 법인세를 올리는 게 낫다. 정부가 겉으로 하는 얘기와 실제 하는 일이 일치하도록 하는 게 맞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교수는 법인세 인상의 3가지 방법으로 공제감면을 축소해 실효세율을 올리는 방법, 전 구간에 일정비율씩 올리는 방법, 순익 1천억 원 넘는 기업에는 최고 과세 구간을 하나 더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법인세를 올리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기업들의 우려를 덜어주려면 세금 대신 규제를 풀어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소가 세금이 아니라 규제라고 재계에서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단체에서는 오른발에 세금 족쇄를 채우고 왼발에 묶여있던 규제를 풀어줬다고 기업들이 제대로 뛸 수 있겠느냐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세금과 규제를 묶어서 생각해야지 분리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법인세를 묶고 규제를 강화할테니 적극 투자하라고 하는 것과 결국 마찬가지 논리"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선진국에 법인세 최고세율이 10%포인트 이상 낮다는 지적에 대해 경제단체에서는 바로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경상 상의 실장은 "선진국들이 법인세를 많이 낮췄다. 이제 우리나라 법인세가 크게 낮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명목세율은 그대로이지만 대부분 대기업들에 대한 설비나 R&D 투자 등에 대한 감면이 많이 없어졌다. 명목세율만 인상하지 않았지 실효세 부담은 증가했다. 기술적으로는 세부담이 늘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법인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노동시장, 규제, 내수시장 규모 등 그외 경영환경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라며 "국내 주요 기업 수익의 대부분 역시 국내 법인보다는 해외 법인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임을 인식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명목 법인세율은 낮지만 총세수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4.9%로 OECD 국가 중 3번째로 높다는 통계도 재계 단체에서는 자주 인용합니다.

아울러 산업계에서는 법인세율 인상이 곧 산업 공동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습니다.

OECD에서 법인세가 가장 낮았던 아일랜드에 한때 투자가 몰린 것처럼, 역으로 '탈 코리아' 법인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심지어 대기업 본사가 해외로 이전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논리도 내세웁니다.

하지만,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인세율을 올리면 당연히 기업의 부담은 커지겠지만, 현재 사내유보금 보유량을 보면 '못살겠다'고 죽을소리를 할 정도는 아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누리고 있는 세액공제 혜택 등이 있기 때문에 해외로 본사를 옮긴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봉급생활자 유리지갑이 먼저 얇아지고, 그다음엔 자영업자 카운터 장부를 들추고, 공무원 연금도 손을 대는데 기업 세부담만 늘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칠 정도의 낮은 복지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국민경제 전체의 세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전경련 홍성일 팀장은 이에 대해 "증세 논의에 앞서 우리 경제체력에 버거운 복지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 선 복지 및 세출 구조조정, 후 증세 논의가 필요하다. 증세를 하더라도 법인세는 최후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인세 부담은 각 경제주체로 전가되는 효과가 있어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을 뿐 아니라 섣불리 법인세를 인상할 경우 경제활력만 떨어뜨리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법인세율이 2%포인트 높아질 경우 제품가격 상승으로 그 부담이 소비자와 근로자, 기업에 전가돼 각각 32.8%, 16.0%, 51.2%의 비율로 세금을 분담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또 법인세율 2%포인트 상승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33%, 투자는 0.96% 줄어들기 때문에 세입기반이 약화돼 세수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강병구 교수는 "현행 3단계 누진세 구조는 최고세율이 22%인데, 과세표준이 1천억 원 이상인, 부담능력이 있는 기업의 과세표준을 최고 27%까지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본다"고 제안했습니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의 시나리오별 법인세 세수 자료를 보면 약한 단계에서의 세율인상을 했을 때 13조 원, 과세표준 1천억 원 이상인 부분에 대해 최고 27%까지 인상했을 때 향후 5년간 53조 원 정도의 세수 증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강 교수의 제안입니다.

김상조 교수도 순익 1천억 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25%든, 28%이든 과세구간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이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김 교수는 "법인세 인상을 형평의 논리,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로만 가는 건 적합하지 않다"면서 "정부가 돈을 가져다 내수로 쓰면 기업소득의 환류로 기업들에 플러스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재계 일각에도 법인세 인상 문제를 기업의 단기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가 경제의 새로운 틀을 짠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이 없지 않습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장은 기업에 부담이 되겠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확보한 재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경제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며 "정책 운용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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