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배고픔' 인식 전환의 계기 만들겠다"

박계배 예술인복지재단 상임대표 "창작준비금·예술인파견 지원에 역점"


지난 2011년 1월 생활고를 못 이겨 요절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 사례는 국가 차원에서 예술인복지를 돌보기 위한 예술인복지재단이 만들어지는 직접적 발단이 됐다.

이같이 사회적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지난 2012년 11월 출범했지만, 2년이 갓 지난 예술인복지재단이 처한 현주소는 여전히 예술인들의 복지 수요 대비 부족한 재원과 예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 등 녹록지 않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박계배 상임대표는 6일 "예술인들이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생활 속에서 예술이 향유되는 그런 인프라를 만드는 게 제 꿈"이라며 "예술인복지의 모범답안을 만들어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예술인복지 전반을 전담하는 국가기구는 유례가 없다. 그만큼 지난 2년간 재단이 스스로의 위상과 역할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진통이 적지 않았다.

비상임인 김주영 이사장 밑에서 실무 책임을 맡는 상임 대표 자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마찰을 빚은 전임 대표 사임 이후 1년간 공석이었다.

지난해 도입한 예술인 긴급복지 지원 제도엔 수용 범위를 초과하는 신청자들이 몰리고 지원 자격 등을 둘러싼 혼란과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적지 않은 산고도 겪어내야 했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박 대표는 예술인복지의 접근 방식 자체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인복지 구현을 위해 사회 일반의 복지와는 구별되는 별도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재단의 역할은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장려하고,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예술인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수준의 경제활동 영위에 기여하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

박 대표는 30년 넘게 연극계에 몸담아왔다. 1984년부터 2004년까지 대학로 샘터파랑새극장 극장장을 지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내면서 연극 분야의 지역균형 발전에 공을 들여왔다.  그 과정에서 '예술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예술계의 나아갈 바를 고민하게 됐다.

"사회적으로는 아직 예술인들 복지를 얘기하면 저항감이 적지 않습니다. 쓸모없는 잉여인간들을 왜 도와주느냐 하는 인식이죠. 예술인들 내부에서도 예술가들은 배고파야 하며 물질적 풍요는 멀리해야 한다는 통념이 굳게 자리매김해있습니다. 이른바 '열정 페이'(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저임금 관행)를 가장 강요하는 데가 예술계입니다. 사회적인 인식뿐 아니라 예술인 스스로 달라져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창작 행위에 대해 제값을 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한 인식 전환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재단의 지원은 생활 자체보다 창작 지원에 초점을 맞추려 합니다."

박 대표는 지난해 긴급지원 제도의 방향을 다시 '창작준비금' 지원 방식으로 틀었다. 창작의 의욕을 지닌 예술인들이라면 보건복지부가 제공하는 긴급지원 복지의 수혜와 창작준비금을 동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해 생활 지원과 창작 의욕 고취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의도다.

박 대표는 "올해에는 반영하지 못했지만 가능하다면 내년부터 차등적인 매칭 지원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술활동을 통해 더 많이 벌어들이는 예술인들에게 더 많이 지원함으로써 창작 의욕을 더욱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로 인한 수혜자 감소가 또 다른 논란과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재단 측은 원로 예술인을 위한 창작준비금 제도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만 70세 이상 지원 요건에 해당하는 예술인들의 경우 강연 등 최소한 예술활동의 요건만 갖추면 창작준비금을 지원하도록 했다.

재단이 올해 역점을 둔 또 하나의 사업은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이다. 기업체 등이 예술인들을 고용하도록 지원하고, 고용된 예술인들은 해당 분야에서 예술활동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활동에 종사하도록 하는 제도다.

예술을 활용해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시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제고하고, 기업과 예술인 개인에게도 이득이 돌아가도록 하자는 취지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활동은 그간 우리에게 사치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렇게 생존과 경제에 치중하다보니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좌뇌는 엄청나게 발달한 반면, 우뇌는 찌그러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산층의 기준이 30평 이상 아파트와 월 수입 400만원 이상, 1년에 해외여행 한 번 이상이라고들 합니다. 서구 선진사회 중산층은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루고, 하나 이상의 요리를 할 줄 알고, 공공분야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하죠. 우리도 이제 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서를 일깨우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예술 활동의 시대적 사명은 큽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 적용 사례는 그 같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파견 예술인들은 직원들의 이용도가 낮았던 라이브러리 공간에 직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판화 작업을 위한 오픈 스튜디오를 열었다.

직원들의 참여 열기는 높았고, 사내 소통과 협업의 문화 개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환경미화원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판화 작업은 직원들과 환경미화원 사이의 거리를 좁혀 화장실 이용 문화 개선에도 이바지했다. 예술적 경험이 우리의 일상을 보다 따뜻하게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늘 놀고먹는 놈들인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이 만지니까 돌에서도 빛이 난다는 것을 일상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를 통해 '예술인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은 재단이 고용을 지원하지만, 기업들이 스스로 예술인들을 고용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재단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자존심 높고 예민한 성향인 예술인들과의 상담 업무조차 쉽지 않다. 책임자를 포함해 총 4명인 콜센터 직원은 수시로 바뀌어 현재 평균 재직기간이 5.3개월이다.

박 대표는 "제가 예술학도일 때 가졌던 세 가지 꿈은 살아생전 자가용 타기와 자유로운 언로의 보장,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 무대였는데, 마지막 꿈만 실현되지 않았다"며 "예술활동의 경제적 기반을 넓혀 그 꿈 또한 이루는 데 밀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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