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시끄러운 한국 영화계…시대 역행하나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사퇴종용에, 영화제 상영작 사전심의 논란까지


연초부터 한국 영화계가 시끄럽다.

부산시는 독립성이 최우선이어야 할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종용했고, '영화 진흥'에 힘써야 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영화제 상영작 사전 심의를 추진하는 등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영화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파열음의 시발점은 부산국제영화제다.

지난달 23일 부산시 고위 관계자가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BIFF) 집행위원장을 만나 우회적으로 사퇴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며 영화계가 발칵 뒤집혔다.

부산시가 작년 말 실시한 BIFF 조직위원회에 대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초청작 선정 관련 규정 위반 등 지적사항을 전달하며 쇄신을 요구한 것.

이를 두고 영화계는 BIFF 측이 작년 10월 서병수 부산시장의 요구를 거부하고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 집행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서 시장과 만나 유감을 표하고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태는 일단 봉합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 등 영화단체 12곳은 '부산국제영화제 독립성 지키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부산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분명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오는 등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셈이 됐다.

영화제 조직위는 오는 9일 'BIFF 미래비전과 쇄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영진위가 영화제 상영작을 사전 심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화계 안팎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현재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29조 1항에 근거한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영진위나 정부, 지자체가 주최·주관·지원·후원하는 영화제 등의 경우 영화상영등급을 받지 않은 영화도 상영될 수 있다.

영진위는 등급면제 추천권을 소위원회를 거쳐 최고의결기구인 9인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는 내용으로 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마케팅 시사 등 영화제가 아닌 형태의 행사 등이 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 제도를 오·남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고자 실무적으로 관련 규정과 개선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는 것이 영진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규정을 개정하면 정권 비판적인 영화 등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의 상영을 제한하는데 악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전 검열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영화계가 우려하는 바다.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지난 2일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의 방문을 받고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개정 시도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런 논란 속에 한국 영화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졸업영화제가 "등급분류 면제 추천을 받지 못해" 부득이하게 행사를 취소하는 사태도 빚어졌다.

영진위는 오는 4월부터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방식도 바꿀 예정이다.

이른바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지원 사업'으로, 영진위가 선정한 한국 예술영화 26편을 정해진 스크린에서 정해진 회차만큼 상영해야 지원하는 내용이다.

독립예술영화전용관모임과 사단법인 한국독립영화협회 등은 즉각 성명을 내고 "지원 대상에 선정되지 못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예술영화관에서의 상영기회마저 제한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공교롭게도 영진위의 이런 시대역행적 행보는 김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잇달아 진행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국 영화계의 고질병인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에 따른 문제도 여전하다.

극장 체인을 가진 대기업 CJ E&M이 투자·배급한 '국제시장'은 개봉한 지 두 달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상영관 500여 개에서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상영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작은 영화들은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기업 영화'에 밀려 흥행에는 실패한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제작사 삼거리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최근 박 대통령에게 대기업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호소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엄 대표의 호소에도 박 대통령마저 지난달 28일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미리 손수건까지 챙겨가며 '국제시장'을 관람하는 것이 지금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다.

지난 2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1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영화산업 매출은 2조276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이는 극장 입장권 요금이 오르고 디지털 온라인 시장 매출이 늘어난 탓이 크다. 영화 산업의 성장에도 투자 수익률은 0.3%로 전년도(14.1%)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고, 한국영화 총 관객수는 2013년보다 15.4% 줄어든 1억770만명이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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