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듯 닮은 기성용, 박지성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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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소속팀 스완지 시티로 복귀하기 위해 출국했다. 1월 한 달 아시안컵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고 사흘 만에 복귀다. 혹독한 일정이지만 쉴 틈이 없다. 에이스가 빠진 사이 소속팀 스완지도 속이 타들어 갔다. 1승 1무 1패. 반전이 필요한 상태다.

기성용은 4일 오후 1시 인천공항을 통해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는 오전부터 결혼 후에도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기성용의 소녀팬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달라진 것은 기성용의 존재감이다. 수 많은 팬들과 취재진 앞에 선 기성용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책임감'과 '목표의식'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대표팀이 가야 할 방향이다. 아시안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기성용은 "이번 대회에서 모든 선수들이 가진 100%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국민 여러분들께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좋은 축구를 보여드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승하지 못했고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이 월드컵이다. 월드컵은 아시안컵과는 또 다르다.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차분하게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다음 목표를 강조했다.

기성용은 아시안컵 기간에도 주장이라는 역할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며 박지성과의 비교에도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팀은 캡틴 박지성 은퇴 이후 리더 부재로 고민해 왔다. 이후 박주영부터 구자철, 이청용, 기성용까지 여러 어린 선수들이 차례로 주장 완장을 물려 받았지만 팀 안팎에서 여러가지 잡음에 시달리며 적합한 리더를 찾지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 기성용은 최근 몇 년 사이 또래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장 크게 성장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SNS 사건 등 갖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대표팀 주장으로서도 새로운 유형의 리더로 인정받는 커다란 계기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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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취재진들이 박지성과 비교하는 질문을 꺼내자 "주장이라는 자리는 절대로 쉬운 자리가 아니다. 지성이 형도 그렇고 그 이전의 선배들이 얼마나 많이 노력했고 또 힘들었을지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에둘러 답했다.

2010년을 끝으로 이영표, 박지성 등 대표팀 베테랑들이 은퇴했을 때 다음 세대의 중심이 되어야 할 선수들은 사실 경험치를 놓고 봐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박주영은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무려 세 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지만 지금 대표팀에서 입지가 없다. 브라질월드컵에선 기성용과 이청용이 중추를 맡았지만 그 화학작용도 힘을 내지 못했다. 경험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대표팀은 차두리가 복귀한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서 값진 교훈으로 알게됐다.

그런 사실은 어느새 기성용이 '지성이 형과는 다르다' 손사래를 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박지성의 뒤를 잇고 있는 듯한 대목에서도 알 수 있다.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을 맡았을 때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최고의 강점 중 하나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인 역할을 도맡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자세는 그라운드 안에서나, 그라운드 밖에서나 한결 같았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가장 많은 활동량으로 다른 선수들에게 투혼을 불어 넣었고, 그라운드 밖에서는 경기에 나서지 못해도 팀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선배, 후배들을 챙겼다.

무거운 몸을 안고 소속팀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시안컵 대표팀 주장으로서 마지막 인터뷰를 하던 기성용도 마찬가지였다. 기성용은 자신이 이번 대회를 잘 마칠 수 있었던 공을 팀원들과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돌렸다. "내가 주장으로서 엄청나게 대단한 것을 했다고 생걱하지는 않는다. 주위에 선배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래서 큰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었다. 고참인 성룡이 형이 경기를 한 경기도 못 뛰었는데 제일 내색 않고 열심히 해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그리고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한 선수들이 힘들었을텐데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훈련하고 팀 분위기를 잘 살려줬다. 그 선수들한테 미안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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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기성용은 당장 오는 주말 스완지 시티의 홈에서 열리는 선덜랜드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상대팀 선덜랜드는 기성용이 2013/14 시즌 동안 임대생활을 하기도 했던 팀이어서 더 특별한 경기다. 한국인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양 팀 모두에게 이렇게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경우도 흔치 않다. 기성용은 "사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다. 하지만 팀을 너무 오래 비웠고, 축구선수로서 감독이 찾아 준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컨디션 관리를 잘 해서 돌아가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언제나 출국장에 들어서면 수 많은 팬들에게 둘러쌓여 쉽게 빠져날 수 없는 것부터 대표팀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경기를 뛰느라 녹초가 됐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팀을 위해 10시간을 날아 영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까지. 기성용은 어느새 박지성과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주 많이 다른 선수였던 후배가, 대표팀 주장 완장을 물려 받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다.

[사진=SBS스포츠 중계화면 캡처]

(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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