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재은 “아역 땐 시키는 연기만…결혼하고 욕심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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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은을 말하면 십중팔구는 “아역배우였던?”이란 짧은 반문이 따라온다. 첫 드라마였던 ‘적도적선’(1985)에 출연할 때 이재은의 나이가 5살이었으니 연기경력은 바야흐로 30년이다. 그녀 나이도 서른중반을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역이었던’이란 수식어가 붙운 건, 어린시절 이재은이 보여준 강렬한 연기의 잔상 때문일 테다.

대학로에서 만난 이재은은 그래서 더 놀라웠다. 2013년 이재은은 첼로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그려낸 연극 ‘모노드라마 첼로의 여자’로 무대에 선 이후 연기의 폭은 더 넓어졌다. 지난해 11월까지 이재은은 누더기를 입고 여자 거지가 됐다. 연극 ‘각시품바’ 무대였다. 한껏 어깨를 들썩인 뒤 극장 나서던 관객들은 이재은에게 ‘아역’이란 군더더기 설명을 거부했다.

이재은은 다시 한번 관객들의 빤한 예상을 넘어섰다. 연극 ‘숨비소리’에서 이재은은 70대 치매노인을 연기하고 있다. 이재은은 ‘각시품바’를 올린 임창빈 연출과 다시 손을 잡았고 남편 안무가 이경수 씨도 여기에 참여했다. “왜 파격적인 작품과 연기를 선택하나.”란 질문에 이재은은 “어려워도 이런 연기가 하고 싶은 이유니까.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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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술은 부르텄지만 좋은 연기 포기할 수 없어

Q. 입술이 다 텄다. 연습이 쉽지 않은가보다.

“연극 ‘각시품바’ 끝내자마자 곧 ‘숨비소리’ 연습에 들어갔다. 하루 일정을 말하자면, 아침 10시에 일어나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을 하고 집에 가서 대본을 보다가 새벽 1시쯤 잠이 든다. 그리고 또 10시엔 대학로로 나온다. 쉴 틈이 없다.”

Q. 그만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어야 했나보다.

“수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연극도 있지만 이 연극에선 수익 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아내가 좋은 무대에 서는 게 더 소중했기 때문에 선택한 작품이다.”(남편 이경수)

Q. 70대 노인, 그것도 치매에 걸린 노인 역이다.

“노인 연기는 처음이다. 그래서 분명 미숙한 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연극은 말 그대로 라이브다.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미숙하면 보충하면 된다. 부담감을 갖기 보다는 노인의 정서를 이해하고 배우가 거짓말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 우울증 여성에서 품바로, 또 치매 노인으로…

Q. 직전에 한 품바 역을 통해서 얻은 건 뭔가.

“자신감이다. 연극 성향이 굉장히 특이했다. 객석에 말을 걸어야 했고 또 모노극이었다. 겁은 났지만, 마당놀이와 소리를 했기 때문에 할수록 재밌다고 느낀 작품이었다.”

Q. 2013년에도 쉽지 않은 모노극에 출연했는데.

“‘첼로의 여자’는 첼로를 오브제로 쓰면서 우울증에 걸린 한 여자의 말을 담은 연극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한 아주머니가 나갈 때 ‘죄송해요. 알아주지 못해서 죄송해요’라며 손을 잡아줬다. 관객가 소통을 했다는 마음에 뿌듯했다. 그리고 더 관객들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는 매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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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노극에서 품바 연기, 이제는 노인연기까지. 이쯤되면 쉽지 않은 작품만 찾아다닌다는 생각도 든다.

“기사에도 여러 번 났지만 집사람(이재은)이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모른 채 연기를 했다. 결혼한 뒤 속마음을 얘기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이제 집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말고, 하고 싶어하는 연기를 하게 해주고 싶다.”(이경수)

Q. 쉽지 않은 치매연기를 위해 참고한 게 있나.

“저희 할머니가 치매셨다. 신랑의 외할머니도 치매로 돌아가셨다. 본 것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무엇을 따라하기 보다는, 그저 그 사람이 느낄 평범한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보기엔 웃기고 엉뚱해보일 수 있더라도 스스로는 진지하게 연기에 임했다.”

◆ 남편의 생일 선물로 선택한 연극 '숨비소리'

Q. 생일 선물로 이 작품을 했다는 말도 있던데.

“신랑의 생일이 2월이다. 케이크 자르며 축하하는 생일은 길지 않은 삶에서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잔소리 같을 순 있겠지만 30대에 이 작품에 꼭 해보길 바란다’며 이 작품을 추천해줬다. 남편의 마음을 충분히 안다. 나도 그 말에 100% 공감했고 나를 배우로서 믿어준 부분에 대해선 정말 고맙다.”

Q. 무대에 올리기까지 산통이 대단했다고 하던데.

“대본이 그동안 세 번 바뀌었다. 기획했던 게 있었는데 그게 바뀌고 또 바뀌었다. 연출님이 고민이 정말 많았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연기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는 감동을 주긴 어렵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고 소소하고 다 아는 편안한 내용에서 오는 감동을 주고 싶다.”

Q. ‘숨비소리’가 주는 메시지는 뭔가?

“확실한 건 슬픔은 아니다. 치매 환자가 모든 가정에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든 걸릴 수 있는 게 바로 치매다. 그래서 희노애락을 모두 담고 싶다. 주제는 어렵지만 다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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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관객들이 봤으면 좋겠나.

“타겟층은 없다. 20대 스태프들이 보고 ‘의외로 재밌다’고 하더라. 그들은 20원 동전을 넣는 공중전화기도 보지 못했고 50원짜리 아이스크림도 먹어보지 못한 세대다. 그래서 더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시키는 것만 했던 아역시절, 이제는 하고 싶은 연기

Q. 이제 못하는 캐릭터는 없을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나도 못할 것 같으니까 그걸 선택하는 거다. 그래야 도전하는 거니까.”

Q. ‘변신, 파격, 도전’ 등으로 점철된다. 부담은 없나.

“관객들은 이제 '이재은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고 봐주는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연기를 보기 보다는 ‘아직 어리지 않나’라고 단정짓는 분들도 있다. 그런 걸 깨고 싶다. 욕을 먹더라도 한번도 도전하지 않은 것에 도전하고 싶다.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이건 내 꺼다. 후회나 그런 것에 대한 자신감은 없다.”

Q. 결혼 이후 예술성이 짙어진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스물여섯에 시집을 갔는데 그 때 심리상태나 생각이 가장 많이 가장 바뀌었다. 결혼한 지 한달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런 와중에 신랑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면서 한국 무용을 전공한 남편의 성향이 나에게도 깊은 영감을 준 것 같다.”

Q. 상업적인 이득보다는 작품성을 중시하는 것 같다.

“극장이 후지다고, 혹은 개런티를 얼마 못 받는다는 이유로 작품을 가리지 않는다. 정말로 대본만 본다 ‘각시품바’도 그랬고, 앞으로 할 모든 작품에서도 그럴거다. 포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길거리에서도 마음껏 연기를 펼쳐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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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꼭 해보고 싶은 도전이 있다면?

“남편은 무용가로서 굵직한 세계무대에 선 적이 있다. 그래서 많은 얘길 들었는데 나 역시 작품을 통해서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서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한국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넌버벌이었으면 좋겠다. 죽기전에 해보고 싶은 게 그거다. 말하자면 버킷리스트인데 기한을 두진 않는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분명히 기회는 올거라고 믿는다.”

이재은이 무대에 서는 연극 ‘숨비소리’는 오는 3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1관에서 공연된다. 배우 김왕근, 안연주가 출연한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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