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오셨군요"…6·25 전사자 64년 만에 가족 품에


"아주버님~ 이제 청도 고향에 왔심더.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28일 오후 2시 경북 청도군 청도읍 안인리의 오래된 가옥.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유품을 들고 집안에 들어서자 고인의 제수 박돌이(72)씨가 눈물을 떨구며 인사했다.

6·25 전쟁 당시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 한 바닷가에 묻힌 김영탁(당시 22세·1928년생) 하사가 64년여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오빠, 이승에서도 못보고 갔는데. 몸 건강히 하늘나라 가서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만나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시고 행복하세요…" 고인의 여동생 경남(84)씨는 유품인 인식표를 쓰다듬으며 말끝을 흐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신원확인 통보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애써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걱정 많이 했지요. 통지서 받고 며칠 뒤 오빠 군대 가는 날, 가족들 다 함께 읍까지 따라가서 '오빠 꼭 돌아와라'며 손잡고 울던 기억 밖에 안남았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많이 우셨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평생 고인의 제사를 도맡은 제수 박씨도 곁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입대하기 직전인 1950년 늦여름.

가족과 농사를 짓던 김 하사는 익어가는 벼를 훑으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내가 이 나락을 거둬서 밥이나 한번 먹을 수 있을까" 그의 예상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9월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왔고, 64년 뒤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다.

김 하사의 아버지와 남동생은 그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80년 이상된 이 집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입대 전 그가 마당에 심은 감나무에 감이 열릴 때마다 가족의 그리움은 깊어졌다.

유품을 전달받은 가족은 고인을 기리며 따뜻한 쌀밥을 지어 먹고 선산을 찾았다.

가족들은 점술가에게서 받은 음력 12월 8일에 김 하사의 제사를 지내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 하사가 유족의 품으로 돌아온 이 날은 음력 12월 9일이다.

유해를 전달한 국방부 관계자는 "고인이 음력 12월 9일 기일에 맞춰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 하사는 2000년 전쟁 50주년을 맞이해 정부가 유해발굴사업을 벌인 이래 100번째로 돌아온 전사자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군번줄에는 한국군을 의미하는 'K'와 군번 '1136180'이 선명했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13년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에서 7구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으나 김 하사를 포함해 2명의 신원만 확인했다.

백사장에 묻힌 김 하사의 시신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이학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제보를 받고 2년간 발굴, 신원을 확인하는데만 15개월이 걸렸다"라며 "한낮에 처음 발견했는데 60년 넘게 차가운 바닥에 누운 분을 두고 올 수가 없어 밤늦게까지 작업을 벌인 뒤 제사를 올렸다"고 말했다.

김 하사의 유해는 오는 6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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