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3인방은 이미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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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3명의 비서관들을 언론에서는 흔히 ‘문고리 3인방’ 또는 ‘청와대 3인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명의 비서관들은 지금까지 이 표현에 아무런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불만이 있지만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3인방’(三人幇)이란 말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3인방’의 ‘방’을 ‘幇’ 이렇게 표기합니다. 간체자를 사용하는 중국에서는 조금 다르게 표기합니다. ‘방’의 첫 번째 뜻은 동사로 ‘돕다’(help)입니다. 그런데 ‘방조’(幇助)란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는 한국과 중국이 다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는 ‘방조’를 “형법에서, 남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모든 행위로 정범(正犯)의 범죄 행위에 대한 조언, 격려, 범행 도구의 대여, 범행 장소 및 범행 자금의 제공 따위가 있다”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글자 그대로 ‘남을 돕다’는 의미입니다. 즉 누구를 돕는 것은 같은데 한국에서는 나쁜 의미로, 중국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방’(幇)이 명사로 쓰일 경우 대체로 4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그룹(group) 즉 단체입니다. 둘째: 비밀 결사체입니다. 1920-30년대 중국을 시끄럽게 했던 ‘청방’(靑幇) ‘홍방’(紅幇)이 바로 그것입니다. ‘청방’은 폭력, 마약 판매, 매춘 등을 일삼은 요즘으로 치면 거대 조폭과 비슷한 조직으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방’의 세 번째 뜻은 파벌입니다. ‘상하이방’(上海幇)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하이방’은 1985년 상하이 시장, 1987년 상하이 당 서기장 겸 중앙정치국 위원, 1989년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거쳐 1990년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올라 중국의 당과 정부의 전권을 완전히 장악한 장쩌민(江澤民)의 후원에 힘입어 중국의 실세로 군림했던 상하이 출신의 인물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방’이 갖는 네 번째 뜻은 함께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일으키는 패거리 또는 갱(gang)입니다. 1960-70년대 문화대혁명 당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중국의 대혼란을 야기한 ‘4인방’(四人幇)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4인방’은 마오쩌둥의 부인이었던 장칭을 비롯해 정치국 위원이었던 야오원위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주석 왕훙원, 정치국 상임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장춘차오를 가리킵니다.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이들 ‘4인방’이 체포되면서, 문화대혁명은 막을 내렸습니다.

한국어에는 원래 단체나 패거리를 뜻하는 ‘방’이란 단어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3인방’이니 ‘4인방’이니 하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바로 중국의 ‘4인방’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말을 긍정적인 의미든 아니면 부정적인 의미든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예를 들면 ‘꽃미남 4인방’이란 말을 버젓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중립적 단어가 있는가 하면 ‘포폄’(褒貶)의 의미가 담긴 단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독립의 장본인’이라든지 ‘세계 평화의 장본인’이란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장본인’(張本人)은 말 자체에 부정적 의미가 내포된 이른바 ‘폄의사’(貶義詞)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장본인’이라는 표현 대신 ‘주역’ 또는 ‘주인공’이란 말을 써야 합니다.

저는 ‘방’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제가 위에 설명한 것처럼 중국에서 ‘방’이란 표현은 거의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4인방’을 영어로는 ‘Gang of Four'라고 합니다. ‘방’이 ‘gang’이라는 것입니다. ‘방’이란 말은 원래 중국에서 사용됐기 때문에 우리가 쓸 때도 부정적인 상황에만 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경제 발전의 5인방’, ‘한국전쟁 영웅 4인방’, ‘삼성 라이온즈 우승의 4인방’, ‘소치올림픽 미녀 금메달리스트 3인방’이란 표현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3인방’ ‘4인방’이란 말에는 패거리의 이익을 위해 작당한다는, 그래서 이미 말 자체에 ‘나쁜 놈’ 이란 뉘앙스가 담겨져 있습니다. 국내 언론에서 지칭하는 이른바 ‘청와대 3인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이들이 실제로 나쁜 짓을 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3인방’이란 표현을 단정적으로 쓰는 것은 한번쯤 신중히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3인방’과 달리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3총사’입니다. ‘3총사’는 프랑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제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3명의 비서관을 놓고 ‘청와대 3총사’ ‘문고리 3총사’라고 표현한다면 이것도 어색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청와대 비서관 3명의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데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청와대 실세 비서관 3명’ 또는 ‘청와대 핵심 비서관 3명’이라고 쓰는 게 가장 중립적이고 무난한 용어 선택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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