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변수 등 난제 산적…드라기 리더십 주목

디플레 우려·저유가 지속으로 '비둘기파' 우세…독일 견제 견뎌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전면적 양적완화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ECB 내부 역학 구도의 변화라는 원인도 자리한다.

디플레이션 발생에다 저성장 전망까지 겹쳐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초저유가 상황이 지속되자 양적완화를 선호하는 이른바 비둘기파 동조 또는 우호 세력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초저유가는 양적완화시 우려되는 물가 상승을 상쇄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드라기 총재는 22일(현지시간) 통화정책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원들은 자산 매입 확대 프로그램이 적법한 통화정책이라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재는 "이 양적완화 정책은 바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도 압도적 다수가 의견이 같았기 때문에 투표할 필요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회원국 간 20%의 채권손실 위험분담 원칙에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결국 이 설명은 그가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만나 사전 조율하고 나서 집행이사회가 준비한 기본안이 큰 논란 없이 처리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원국 간 이견을 미리 조율한 결과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날 집행이사 6명과 19개 회원국 중앙은행 총재 등 25명의 정책위원 중 투표권을 가진 이는 순번제 원칙에 따라 배제된 그리스, 스페인, 에스토니아, 아일랜드를 제외한 21명이었다.

회의 직전 일각에서는 정책위원 25명 중 드라기 총재 등 9명을 비둘기파로 분류했다.

양적완화를 경계하는 매파는 반대 세력인 독일 2명을 비롯해 네덜란드·룩셈부르크·에스토니아·라트비아 각 1명 등 6명으로 파악됐다.

그 외 중립 지대가 6명이고, 성향 파악이 힘든 이들은 4명이었다.

이것만 봐도 작년 11월과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파 위원이 최다 10명에 이를 것이라는 일부 분석이 있었던 만큼 최근 들어 비둘기파에게 유리한 대결 구도가 조성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드라기 총재는 이미 2012년 9월 무제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을 발표했을 때부터 양적완화에 집착을 보여왔다.

그는 그러나 그리스 같은 위험국 국채의 매입 부담을 공유하는 게 싫고, 돈을 싸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주요국이 재정 건전화와 개혁 속도를 늦추리라 우려한 독일 등 반대 세력의 견제에 전진할 수 없었다.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독일중앙은행) 총재, 그리고 또 다른 독일 몫의 자비네 라우텐슐래거 집행이사와는 대놓고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잦았다.

라우텐슐래거 이사는 "이미 시행 중인 ABS(자산담보부증권) 매입과 대출 프로그램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고, (경제가 어려운) 남유럽의 은행들이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라며 양적완화에 부정적 태도를 보여왔다.

바이트만 총재는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에서 드라기 총재와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추후 두 사람의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는 지난 14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을 만나 양적완화 방안을 설득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결정의 순간을 준비했다.

드라기 총재는 앞으로 정책 시행 과정에서도 독일의 견제를 계속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는 ECB나 독일에 상당기간 골치 아픈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 ECB, 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2010년 이래 수혈받은 부채는 무려 2천400억 유로다.

이 가운데 독일 채권이 750억 유로이다.

그런 그리스는 오는 25일 총선을 앞두고 집권을 넘보는 좌파 야권 세력이 채무 조정 협상 등을 공약으로 내건 채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일각에선 유로존 탈퇴 시나리오까지 제기하지만, 탈퇴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드라기 총재는 회견에서 "그리스라고 예외가 아니다"면서 그리스 채권도 오는 7월부터 조건이 맞으면 매입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유로존 경제를 책임지는 드라기로서는 그리스뿐 아니라 자신의 모국인 이탈리아 같은 경제난 국가들의 활력 회복이 중요하다.

드라기가 사정이 괜찮은 독일에는 부담스럽지만 처지가 안 좋은 이탈리아에는 보탬이 되는 정책을 강행하는 것을 두고 가끔씩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아니냐'라는 비아냥이 따라붙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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