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투하는 청춘에게 바치는 '내 심장을 쏴라'


외딴곳에 위치한 수리희망병원(이라고 쓰고 정신병원이라고 읽는 곳)에는 온갖 종류의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가 모여 있다.

같은 날 병원에 들어 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 동갑내기 환자 수명(여진구)과 승민(이민기)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가위 공포증이 있는 소심한 수명은 조용히 병원 생활을 하고 싶지만 자꾸만 병원 밖으로 나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승민 때문에 같이 죽도록 얻어맞거나 격리실에 갇히기 일쑤다.

'7년의 밤'·'28'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정유정의 2009년작 '내 심장을 쏴라'가 동명의 영화로 나왔다. 소설은 제5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정유정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승민이 최기훈 간호사(유오성)에게 휘두른 시계를 몰래 숨겨준 수명은 이후 툭 하면 사고를 쳐 병원을 뒤집어 놓는 승민을 조용히 곁에서 지켜보며 승민이 하루라도 빨리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정신병원을 무대로 환자와 병원 사람들의 얘기를 그리고 있지만 병원은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로, 등장인물은 사회 구성원으로 각각 치환해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영화는 수명이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승민을 통해 세상과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병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는 승민의 질문은 수명에게 던지는 질문만은 아닐 터.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남들은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는 꿈을 향해 '날아가는' 승민이 남긴 말은 꿈을 잃고 방황하는 이 시대 청춘이 한 번쯤 곱씹어볼 말이기도 하다.

상업 영화 연출에 처음 도전한 문제용 감독은 최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에서 "많은 상처 받은 분들이 자기 안에 숨거나 도망치거나 좌절하지 않고 힘을 받아갈 수 있는 힐링 영화"라고 소개했다.

수명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는 원작과 같지만, 원작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면 영화는 1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깝다.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수명이 왜 수리희망병원에 오게 됐는지, 어떤 증상을 겪고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생략됐다. 수명의 아픔보다 꿈을 향한 승민의 열정에 초점을 맞춘 탓이다.

원작 팬이라면 생생한 묘사와 맛깔스런 문체가 빠진 영화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등장인물 개개인에 대한 설명은 확 줄었지만 무뚝뚝함 이면에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최 간호사를 비롯해 '오지라퍼' 김용(김정태), 다른 사람 등에 딱 달라붙어 지내는 만식씨(김기천), 우울한 청소부(박충선), 악질 보호사 점박이(박두식) 등 소설 속 인물과 배우들과의 싱크로율은 비교적 높다.

영화는 해진 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땅에서 시작해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에서 끝난다.

문 감독은 "비 오고 축축한 땅바닥에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안나푸르나 하늘 같은 맑은 꿈이 다들 있을 것"이라며 "그 꿈을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작자 정유정이 극중 정신과 전문의로 특별 출연했다.

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01분.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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