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남은 기내식' 아니면 '남은 1등석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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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었을 때 '설마'했습니다. '땅콩 회항' 이후 SBS에는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다양한 제보가 이어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었습니다. 대한항공의 기내 승무원 식사가 1인당 한 개씩 실리는 것이 아니라 탑승 승무원 숫자의 50~60%만 실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첫 제보자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 60% 정도를 실어줘요. 10명에서 그럼 6명 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20명이다' 그러면 12인분 정도 탑재가 돼요.]

승무원 기내식은 승객 기내식과 구분하기 위해 C라고 써있습니다. 승무원, Crew의 약자입니다. 그런데 C라고 쓰인 기내식이 승무원 숫자만큼 제공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40%는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까요?

대한항공의 기본 입장은 승객용 기내식에 여유가 있으니, 그걸로 식사를 하라는 겁니다. 승객들이 선택하지 않고 남는 것을 먹으라는 것이죠. 

또 다른 승무원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 승객들이 선택하고 남은 종류의 식사가 있잖아요. 승무원들이 그걸, 남은 걸 취식하게 되는 거예요.]

실제로 대한항공의 경우 비즈니스클래스는 120%, 이코노미클래스는 항로에 따라 100% 이상의 식사가 실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남는 걸 먹으면 된다는 건데, 퍼스크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 식사를 먹으니 더 좋은 것 아니냐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시아나 항공을 포함한 다른 항공사들은 대부분 이런 정책을 쓰지 않습니다. 서비스 뿐만 아니라 운항 중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승무원들의 식사가 모자랄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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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승무원 : 두 개를 먹겠다고 하는 손님들이 꼭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 들어올 때는 라면이 있어요. 그래서 젊은 승무원들, 우리가 흔히 주니어라고 부르는 주니어 승무원들은, 예를 들어서 유럽에서 들어오는 비행기에서는 다 라면을 먹어요.]

기내 라면 제공 서비스는 포스코의 '라면 상무 사건' 때문에 잘 알려졌죠. 라면은 1등석 간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신의 기내식이 없는 일부 승무원들이 상위 클래스의 간식으로 식사를 대신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제보자들이 제공한 대한항공 직원들의 게시판에는 실제로 그런 경험담들이 많습니다.

"삼각 김밥(1등석 간식)으로 때운다"
"1등석 빵을 밥 대신 먹었다"
"햇반에 고추장을 비벼먹는다"
"굶었다. 남은 식사 찾아먹는 것도 싫고, 햇반도 싫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 라면이 있든, 개인적으로 뭐 가지고 다니는 비상식량이 있든지 간에 간식거리가 있어요. 또 그런 거라도 그냥해서 주전부리로 때우는 거예요. 한끼를…]

물론 승객들이 고르지 않는 식사가 '생선류'일 경우가 대부분이라, 매 끼니, 매 비행 때마다 똑같은 생선요리를 먹기 싫어 일부러 간식을 먹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왜 대한항공은 안전까지 책임져야하는 승무원들에게 '밥 고민'을 하게 만들까요?

[대한항공 승무원 : 항공사들이 비용 절감이라는 이유로, 비용 절감은 도시락 자체의 원료 절감도 있지만 비행기는 공간과 무게가 돈이지 않습니까.]

대한항공의 입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승무원 식사 덜 실어서 무게를 줄여 기름 아끼고, 남는 기내식으로  승무원 식사 비용 절약하겠다는 겁니다. 한 선진국의 공항에서 기내식을 제공하던 외국 업체는 "이해할 수 없다"며 대한항공이 주문하지 않은 나머지 승무원들의 밥을 무료로 더 실어주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대한항공의 정책에 대해 취재 중에 만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경영 차원에서는 합리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지극히 비인간적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할 말 없다. 고쳐 나가겠다"는 입장을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승무원들은 "땅콩 회항 이후에도 쉬쉬하기에 급급했던 회사가 과연 그걸 고치겠느냐"며 대부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대한항공 승무원 : 언론에 소통위원회 한다고 그렇게 했잖아요. 근데 그거는 진짜 홍보용이고요. 그걸 실제로 만든다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거든요. 그냥 요식행위고요. '회사 분위기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죠, 바뀌지 않는다.]

대한항공이 바뀔 수 있을까요?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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