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번 사건은 '정신병리학자'에게 물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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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봤는데요, 이번 사건은 제가 논평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정신병리학자’에게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에 대해 어느 유아교육학과 교수가 말한 내용입니다. 네 살배기 아이가 폭행당하는 장면은 아동 전문가마저도 정신병리학자에게 조언을 받으라고 할 만큼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때린 가해자가 보육교사였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했습니다. 과연, 그 어린이집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 “엄마,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요.”

지난 8일, 어린이집 원아 한 명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무서워요.” 아이의 얘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이는 머뭇거리다 힘겹게 얘기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무서워요.” 놀란 어머니가 자세히 묻자, 아이는 “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마”라며 더는 얘길 안 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다른 학부모들과 어린이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원장에게 CCTV 영상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원장은 “별일 없었어요.”라고 답했지만, 화면에 담긴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먹기 싫은 김치를 먹어야 했던 아이는 네 살배기 아이는 겁에 질린 채 교사 앞에서 몸을 비비 꼬았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아이는 음식을 뱉어냈고, 그 순간 교사의 거친 손이 아이를 행했습니다. 이종격투기에서나 볼 수 있는 충격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친구가 폭행당하는 걸 지켜본 다른 아이들은 훈련받은 병사들처럼 줄을 맞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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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포토]

● “이렇게 때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보육교사는 왜 아이를 이렇게 가혹하게 때렸을까요? 해당 보육교사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어린이집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하지만, 해당 보육교사를 만날 순 없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어린이집을 휴직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원장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뉴스 리포트에서 다 전해 드리지 못했던 원장의 해명을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린이집 원장]
“보육교사가 이렇게 아이를 때린 줄 정말 몰랐다. 알았다면 절대 이렇게 그냥 안 뒀다. 때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건 확실하다. 사람들 없는 데서 때렸을 거다. 그래서 몰랐다.

[기자]

“영상을 봤을 텐데, 그 교사는 왜 그렇게 아이를 심하게 때렸다고 하나?”

[어린이집 원장]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서 가르치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먹는 것도 교육이니까 잘 가르치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보육교사도 나한테 와서 엄청 미안하다고 했다.”

[기자]

“아이들이 무릎 꿇고 앉은 거 봐서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영상을 수시로 확인하나?”

[어린이집 원장]

“영상을 이번에 처음 확인했다. 그래도 때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믿어 달라. 그러니까 오늘도 어머님들이 믿고 아이들을 등록해 주신 거다. 아직 법적으로 문제가 확인된 것도 아니니 보도는 하지 말아 달라. 행정처분 내려오면 그때 잘 정리하겠다.”

이 해명을 들은 아동학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학습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공포상황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울거나 우왕좌왕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 같이 무릎을 꿇고 앉은 건 어떻게 행동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 경험적으로 체득했다는 거다. 이런 종류의 폭행과 가혹행위가 이전에도 주기적으로 반복됐을 것이다.”

● 경찰, “상습적인 폭행이 있었는지 확인하겠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도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윤종기 인천지방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어린이 집을 폐쇄시킬 각오로 수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윤 청장은 "상습성을 증명해내면 가해자 엄벌이 가능하다."라며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어린이집 폭행이 또 발생할 수 있으니 철저히 수사하겠다.”라며 강한 수사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해당 어린이집을 방문해 CCTV 파일 모두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정밀 분석해 가해 교사가 실로폰으로 아이의 머리를 때리거나 옷을 입히면서 거칠게 잡아당기는 등 학대를 의심할 장면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또, 다른 학부모들이 제출한 피해 진술서 16건도 면밀하게 검토해 교사의 폭행사실을 입증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 아동복지법상 아동 학대는 징역 5년 이하 벌금 3천만 원 이하에 처해지게 됩니다. 또, 아동 특례법상 아동복지시설 종사자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량의 1/2을 과중 처벌하게 됩니다.)

● 어린이집 폭행, 부실한 교육교사 관리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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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캡쳐_64

사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건만도 매년 수십 건에 이릅니다. 왜 이렇게 어린이집 아동 학대는 끊이질 않은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보육교사들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게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보육교사들은 적어도 열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아이를 동시에 돌보게 됩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육교사들의 이런 스트레스는 사실상 관리되지 않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 제공하는 등 보육교사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어린이집은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 정신적 압박감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이번과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교사와 아이 사이에도 일종의 ‘강자와 약자 관계’가 성립하는데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강자인 교사가 ‘폭력’을 동원해 그 갈등을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은 교사의 폭력을 전혀 방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항할 방법도 찾을 수 없습니다.

●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

그동안 아이를 폭행한 보육교사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대부분은 단순 폭행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아동 학대 범죄처벌 특례법이 시행되면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할 경우 가중 처벌하도록 하고 있지만, 크게 나아진 것은 없는 겁니다. 이렇게 처벌이 약한 건 CCTV와 같은 결정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 전국 어린이집 가운데 CCTV가 설치된 곳은 21%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은 표현방법이 각기 다르고, 피해 진술도 어른들만큼 구체적으로 하지 못합니다. 또, 진술이 자주 바뀌는 경우도 많아 법적인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부는 아동복지법과 영유아보육법 등 관련법을 정비하기로 했습니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보육교직원의 자격기준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또, 어린이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부모 모니터링단을 활성화하고, 폭행 피해 아동과 같은 반 아동 모두에 대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앤터니 서머스 '오만한 권력: 리처드 닉슨의 비밀세계 (The Arrogance of Power: The Secret World of Richard Nixon)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닉슨이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기분이 무척 변화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방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명령을 따로 내려뒀습니다. "내가 탄핵받으면 해병대를 출동시킬지 모른다. 만일 그러면, 국방장관 당신이 그 명령을 막아라. "심리치료를 받고 있었던 닉슨은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까지도 마련해둔 겁니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교사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의존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CCTV 설치 의무와 교사의 자격기준 강화, 엄격한 사후 처벌 같이 더 견고하고 더 촘촘한 제도 보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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