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안 남긴' 형제복지원 40억대 매각…계약서도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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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수많은 인권유린 행위로 지탄을 받은 형제복지원의 박인근(84) 전 이사장 측이 부산시의 설립허가 취소 전에 법인을 매각하면서 매수자에게 '거래 흔적을 남기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부산에서 5개의 비영리 공익재단을 설립한 사회복지가인 A(62)씨는 지난해 초 박인근 전 이사장의 아들인 박 모(39)씨 측에게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의 중증장애인시설인 '실로암의 집'을 매각할 의사가 있는지 타진했습니다.

A씨는 몇 개월간의 협의를 거쳐 지난해 5월에 느헤미야의 부채를 모두 떠안는 조건으로 40여억 원에 시설과 법인을 박씨로부터 인수했습니다.

부산시 감사에서 법인자금을 횡령한 혐의가 드러나 재판을 받던 박 씨가 구속(5월 16일)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박 씨는 법인 매각과정에서 A씨에게 '흔적을 남기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고 A씨는 전했습니다.

A씨는 "박 씨는 종이에 (계약서를) 쓰는 것을 싫어했고 통장으로 (매각 대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결국 계약서는 쓰지 않았다고 인정했으나, 매수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줬는지에 대해선 "그건 말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한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는 "사회복지법인 매매가 음성적으로 이뤄져 왔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매각대금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아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박 씨는 당시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상황이었지만 뇌경색으로 쓰러진 박 전 이사장을 대신해 사실상 느헤미야(옛 형제복지원)의 주인 역할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전 이사장 일가는 지난해 초부터 시설이나 법인 매각 절차를 밟아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한 형제복지원은 형제원(1971년)에서 1979년 이름을 바꾼 뒤 이후 재육원(1988년), 욥의 마을(1991년), 형제복지지원재단(2001년)으로 이름을 바꿔왔습니다.

지난해 2월에는 느헤미야로 법인명을 변경했습니다.

당시는 2013년 말부터 서울에서 피해자와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때문에 과거 형제복지원의 어두운 기억이 떠오르는 형제복지지원재단의 이름을 바꿔 이미지 세탁을 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지만 부산시는 이를 허가했습니다.

두달 뒤인 4월에 느헤미야는 '실로암의 집' 매각 계획서를 부산시에 제출해 반려됐지만 박 전 이사장 일가의 법인재산 매각시도는 지역 사회복지업계에 소문이 퍼진 상태였습니다.

박민성 부산사회복지연대 사무국장은 "형제복지원은 국유지 불하와 예산 지원을 통해 만든 복지재단을 개인 일가가 사유화한 전형"이라며 "이사장 등이 불법적으로 법인재산을 횡령하고 상속, 증여는 물론 매각대금도 착복한 정황이 있어 이에 대한 추적이 필요한데 법인매각으로 쉽지 않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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