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때도없이 울리는 화재경보 오작동…안전불감증 키운다


오프라인 대표 이미지 - SBS 뉴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 한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김 모(38·여)씨는 최근 늦잠을 자다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경보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주민들은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녹음된 음성 안내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아파트나 주택에서 작은 불이 삽시간에 번져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익히 봐왔던 터라, 옆에서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대충 겉옷만 입고 현관문을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벌써 복도에 화재연기가 번지기 시작했거나, 불길을 피해 밖으로 나가려는 주민들로 아수라장이 됐으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걱정과 달리 복도는 고요했습니다.

현관문 앞에서 '밖으로 나가야할까 집에 있어야 하는 건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끄럽게 울리던 경보음이 5분여만에 그쳤습니다.

경보음 뒤로 아무런 안내가 없어,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오작동이었습니다. 1년에 70∼80번 정도 오작동이 생겨, 주민들도 경보음이 울리더라도 으레 '오작동'이겠거니 생각하는데, 아직 몰랐느냐"는 황당한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제야 화재 경보음이 울렸을 때 아무도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았던 좀 전의 상황이 이해가 갔습니다.

김 씨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정말 불이 났을 때와 오작동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물으니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경보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울리면 그게 정말 불이 난거다'는 어이없는 설명을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김 씨의 사례처럼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 화재경보기가 수시로 오작동, 즉 불이 나지도 않았는데 경보기가 화재를 인식해 경보음을 내는 사고(비화재보)를 일으켜 주민들의 안전 불감증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의정부시 의정부동 10층짜리 아파트에서 난 불로 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친 사고 당시에도 일부 주민은 경보음을 듣고도 '평소에도 가끔 울려' 대피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대피해 피해가 컸다는 주민 진술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동주택의 안전관리 책임은 건물주에게 있기 때문에 화재경보기 오작동의 구체적인 통계자료조차 없습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따르면 화재경보기 오작동은 건축 기간을 불문하고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래된 아파트는 기계 노후화로, 최근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기계가 '지나치게 민감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화재경보기는 주로 담배연기나, 모기향, 스프레이, 조리부주의 등의 원인으로 오작동이 발생하나, 기계에 쌓인 먼지를 '화재 연기'로 오인해 경보음이 울리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미세먼지 발생이 잦아지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속적인 화재경보기 오작동으로 주민 대다수가 경보가 울리더라도 대피하지 않는 습관, 안전 불감증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수원 영통구 영통동 주민 이모(33·여)씨는 "처음엔 경보음이 울리면 바로 밖으로 나가고 그랬는데, 이젠 하도 그런 적이 많아 웬만해선 현관문을 열어보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경보기 오작동에 주민 민원이 생기자 일부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선 아예 감지기와 연결돼 경보음을 울리게 하는 수신기를 꺼놓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소방행정과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보면 자주 울리니까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있는 수신기를 아예 꺼버리는 경우도 있다"며 "작은 습관 하나가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기계 점검을 좀더 주기적으로 하고, 건물 내 흡연, 요리부주의와 같은 비화재보(오작동) 원인을 애초에 만들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댓글
댓글 표시하기
이 시각 인기기사
기사 표시하기
많이 본 뉴스
기사 표시하기
SBS NEWS 모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