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일가족 방화 참변…방화 사건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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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양양 일가족 4명 참변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 주민이 1천800만 원의 빚 때문에 저지른 비극으로 결론났습니다.

30대 주부와 세 자녀의 목숨까지 한꺼번에 앗아간 이 사건은 가까운 이웃 주민이자 목격자 행세를 한 범인이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처음부터 허위 진술을 한 탓에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습니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정자리 박모(39·여)씨의 2층 주택에 불이 난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9시 30분.

1층이 비어 있는 2층짜리 농가주택인 이곳에 박씨는 3년 전인 2011년 2천500만 원에 전세를 들어 이사 왔습니다.

이 즈음 박씨는 이모(41·여)씨를 알게 됐습니다.

농가주택의 관리인이 이 씨와 친족인 탓에 자연스럽게 왕래가 이뤄졌고, 자녀의 학부모 모임을 통해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박 씨는 2013년 4월 교통사고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남편을 대신해 식당일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요양 중인 남편과 따로 떨어져 지내는 등 힘들 나날이었지만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이혼한 경험이 있는 이 씨로서는 서로 처지가 비슷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 2013년 9월 박 씨는 '돈을 빌려달라'는 이씨의 부탁을 받고 1천800만 원을 빌려 줬습니다.

박 씨는 이것이 자신과 세 자녀에게 닥칠 비극이 발단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3년간 원금과 이자를 갚기로 한 이 씨가 지난해 4월부터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서 가까웠던 이들 사이는 조금씩 앙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지난달 26일 박 씨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이 씨에게 빚 독촉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박 씨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자신의 아들에게 욕설한 것에 격분했습니다.

이 씨는 그대로 박 씨의 집을 나왔고, 머릿속에서는 범행을 계획했습니다.

이 씨는 박 씨가 평소 자신과 같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가뜩이나 남편과 별거 중인 박 씨가 생활고나 가정 불화를 고민하다가 세 자녀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 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2시 강릉의 한 병원에서 수면제(졸피뎀) 28정을 처방받아 40분 뒤 인근의 약국에서 구입했습니다.

이어 병원 인근 주유소에서 2리터짜리 플라스틱 통에 휘발유까지 산 이 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7번 국도로 따라 주문진 방면으로 운행하다가 오후 3시 42분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 2개와 음료수까지 준비했습니다.

이 씨는 자신의 집에서 수면제 28정을 물에 희석하고서 맥주와 음료수 병에 넣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당일 오후 8시.

이 씨는 자신의 집에서 차량으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박 씨의 집에 찾아가 캔맥주를 함께 마셨고 박 씨의 세 자녀에게는 음료수를 먹였습니다.

박 씨와 세 자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이 씨는 박 씨의 집 근처에 숨겨 둔 휘발유를 가져와 안방과 거실에 뿌리고 불을 지른 뒤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오후 9시 40분, 범행 후 이 씨는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박 씨의 집 인근 초등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멈춰 섰습니다.

이 씨는 이곳에서 무언가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저 멀리서 119 소방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 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소방차가 지나가고 2분 뒤인 오후 9시 44분.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 씨의 승용차는 소방차량을 뒤따라갔습니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이 씨는 목격자 행세를 했습니다.

화재 현장에 있던 소방관 등도 이 씨가 박 씨와 아주 가까운 이웃인 줄만 알았습니다.

이 씨는 '불이 난 집에 박 씨뿐만 아니라 세 자녀도 있다'고 말하며 소방관들을 따라 불이 난 주택 내부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경찰에게는 '가깝게 지내던 동생과 그 자녀가 참변을 당해 괴롭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범행 후 차량을 몰고 박 씨의 집 근처를 빠져나와 소방차를 기다렸다가 다시 화재현장으로 이동한 행적이 방범용 CCTV에 포착되면서 이 씨의 가증스런 범행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이 씨는 '박 씨가 평소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다른 이웃 주민들의 말은 전혀 달랐습니다.

이 씨는 자신의 오빠를 통해 '박 씨의 옷이 벗겨져 있었다'고 신고하도록 했으나 이마저도 곧 허위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오락가락한 진술을 한 이 씨를 강하게 의심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현장감식과 부검결과를 토대로 자신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조여오는 경찰의 수사망에 걸려 범행 10일 만에 붙잡혔으며 완전범죄의 꿈은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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