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해빙에도 관타나모기지는 쿠바인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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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했으나 쿠바 동부 최남단에 자리한 미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여전히 쿠바인들의 아픔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무부의 고위 관리는 최근 관계개선 합의에 이르기까지 비밀협상에서 쿠바 측이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온 대로 관타나모 기지의 반환을 요구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이 관리는 "쿠바 측에서 관타나모 기지 반환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번 협상에서는 결국 협상의 초점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약 117㎢ 면적인 관타나모 기지는 원래 쿠바령이지만 1903년부터 미국이 사용하고 있고 약 6천 명의 군인과 군무원 등이 현재 근무하고 있습니다.

관타나모 기지 경계선 너머 북쪽에 있는 인구 21만6천명의 관타나모 시는 쿠바 땅으로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뒷골목은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 쿠바 주민들은 적들과 직면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생활해 왔습니다.

예술을 전공하는 한 학생(25)은 "조금 미묘한 문제가 있다"면서 "미국과 공존하는 것은 50년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다. 좋든 나쁘든 익숙해 졌다"고 말했습니다.

관타나모가 미국의 관할에 들어간 것은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하던 18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은 스페인과 평화조약을 맺으면서 관타나모 관리를 맡게 됐고 그 효력은 1902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후 관타나모는 쿠바의 품으로 돌아가기로 됐으나 미국이 쿠바 내정에 관여하면서 1903년부터 무기한으로 해군기지를 둘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관타나모와 인근 외항 카이마네라 등은 해군기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지내왔습니다.

많은 주민이 미군 기지에서 일했으며 미군들은 현지 술집과 윤락가에 돈을 뿌렸습니다.

이러한 관계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으면서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양국 관계는 그 동안의 협조관계에서 극한 대립관계로 변했습니다.

쿠바는 미국이 제공하는 연 4천85 달러(약 450만 원)의 토지 사용료 수령 자체를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기지에 테러 용의자 수용소를 건설하면서 관계는 더욱 악화됐습니다.

쿠바는 당연히 반발했고 현지에서 고문이 자행된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쿠바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약속했으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28명을 다른 국가로 이송했으나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아직 127명이 잔류하고 있습니다.

관측통들은 관타나모 수용소가 완전히 문을 닫을지라도 미국이 가까운 시기에 해군기지를 쿠바에 돌려주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튜레인 대학의 제이나 리프만 부교수(역사학)는 "양국이 관타나모 문제를 논의할 때가 왔다"고 지적하면서도 반환은 정치적 부담이 많다고 경고했습니다.

리프만 부교수는 "여론을 고려한다면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결정이 될 수 없다"면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부담이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관타나모 현지 사람들은 현재 카스트로 정권의 지지 여부를 떠나 관타나모 기지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간호사인 일리아나 코티야는 "그것은 쿠바 영토지 미국 것이 아니다"며 "우리 땅에서 수용소를 건설하고 사람들을 고문한다는 것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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