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진의 SBS 전망대] 팽목항 유족 "저희가 남아있다는 거 기억해주세요"

대담 : 세월호 유족, 진도 팽목항 김성훈 씨 & 김영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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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사회자:

2014년 마지막 인터뷰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송년 특별 인터뷰 시간 마련해왔는데요. 꼭 만나야 할 꼭 기억해야 할 분들이 있죠. 오늘 마지막 시간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진도 팽목항으로 가보겠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수색이 종료됐지만, 여전히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이 남아있습니다. 현지에서 ‘팽목 삼촌’ 이라고 불리는 분이세요. 단원고 학생이었던 故 진윤희 양의 삼촌, 김성훈 씨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김성훈씨 나와 계십니까?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안녕하세요, 김성훈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세월호 사고로 조카를 잃으신 거예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 한수진/사회자:

4월 16일 그 날 이후 꼭 260일이 지났는데요, 어떠세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저희야 뭐... 가족들은 4월 16일 이후로, 계속 4월 16일의 연장일 뿐이죠.

▷ 한수진/사회자:

그래요, 당시 사고 소식은 어떻게 들으신 거죠?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일단 저는 귀농한 지 5년 된, 해남에서 귀농한 지 5년 되어 갖고 농사를 짓고 있었거든요.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삼촌한테 계속 연락이 오더라고요.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세월호가 이제 침몰하고 있다고, 그 안에 윤희가 들어있다고 그런 얘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 이후로는 정말 가족들에겐 악몽 같은 시간들이 계속 된 건데. 그런데 진윤희 양의 시신은 찾았다면서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4월 22일 날 찾았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런데도 지금 계속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계신 건데. 어떤 이유일까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그 때 생활하던 곳이 몽골텐트였는데, 텐트 벽에 아이들 이름을 쭉 적어놓고 “아이들이 다 나올 때까지 팽목을 떠나지 말자” 가족끼리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다 안산으로 올라가게 되어 지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 중에 아직 찾지 못한 아이가 한 명 있는데, 바로 1반 조은화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조은화 학생.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은화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고, 그 다음에 세월호가 저기에 있다면 누군가 한 명은 지켜보고 약속을 지켜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래서 지금 단원고 희생자 학생들, 모든 학생들의 삼촌이 되신 거네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네.

▷ 한수진/사회자:

아직 돌아오지 못한 바다 속에 있는 실종자가 9명인데, 단원고 학생이 4명이 있고요. 그리고 선생님 두 분이 계시고, 또 일반인 희생자 한 분, 또 권재근, 권혁규 부자 이렇게 두 분이 또 계시네요. 지금 가족들이 여전히 팽목항에 계시는 건가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지금 팽목항에 남아있는 가족은 세 가족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다윤이네 가족하고, 그런데 다윤이네 가족은 다윤이 어머니가 지금 많이 편찮으셔서. 다윤이 아버님이 왕래를 하고 계시고요. 그 다음에 권재근 씨의 형님인 권오복 씨가 계시고, 그 다음에 양승진 교사 사모님 유백형 씨가 계십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러니까 지난 11월 11일에 일단 공식적인 수색작업은 끝난 건데도 유족들은 여전히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계신 거네요. 집으로 가실 순 없는 건가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집으로는 당연히 갈수가 있죠.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세월호가 저기에 있고, 이 ‘팽목’이란 장소가 역사적인 장소이고, 아이들을 처음 접할 수 있는 장소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팽목항은 아마 영원히 유지가 되고 지켜 나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유가족들은 남아있고요. 저도 그 생각 때문에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고요.

▷ 한수진/사회자:

지금 가족 분들은 인양을 원하고 계시는 건가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당연하죠.

▷ 한수진/사회자:

그 작업이 아직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거죠?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네. 

▷ 한수진/사회자:

무엇보다도 날이 이렇게 추워졌는데, 조립식 가구에서 지낸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세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이동식 주택에서 생활하는데요, 집처럼 그렇게 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텐트 생활할 때보다 나은 상황이고요. 다만 정부에서는 방치하다시피 가족들을 버리고, 가장 기본적인 응급 의료진이나 119 소방대원들도 다 철수한 상황이니까요. 가끔씩 어머님들이 갑자기 편찮으실 때가 있으신데, 그 때마다 제가 좀 많이 걱정이 되죠.

▷ 한수진/사회자:

자원봉사자 분들은 좀 계시고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고정으로 계신 자원봉사자 분들은 네 분 정도 계시고요. 

▷ 한수진/사회자:

여전히 또 지켜주시고 있고. 그런데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은 끊겼다는 말씀이시네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 한수진/사회자:

아까 다윤이 어머니 아프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엇보다 그런 상황이라면 유족들의 건강도 상당히 걱정이 되네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지금 환자 아닌 분이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 한수진/사회자:

아무래도 그렇겠죠.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어떤 분은 심장이 안 좋으시고 어떤 분은 관절이 안 좋으시고, 이유 없는 아픔들도 있고요. 병원에 가서도 어떤 증상이, 의사들도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 한수진/사회자:

김성훈 씨께서는 언제까지 진도에 계실 계획인가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이제 누군가는 끝을 봐야 되기 때문에 끝을 볼 때까지 있으려고 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세월호 팽목항, 생각만 해도 아직도 마음이 아프신 분들이 많으신데요. 예전보다는 관심이 좀 덜한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좀 서운함은 없으세요?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당연히 서운한 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저희가 강요는 하지 않고 있거든요. 슬픈 걸 강요할 순 없고, 또 기억하는 걸 강요할 순 없기 때문에, 다만 저희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만 기억해주시고, 세월호의 아픔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고, 그 다음에 앞으로 어떻게 해결이 될지를 지켜봐주시는 게 그게 저희를 도와주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수진/사회자:

네, 꼭 기억해 달라, 마음만으로는 꼭 함께 해달라는 말씀이시네요.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겠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 김성훈/ 세월호 희생자 故진윤희 양 삼촌

네, 알겠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진도 팽목항에 계시는 단원고 학생 故진윤희 양의 삼촌 김성훈 씨 만나봤습니다. 유가족 한 분 더 연결하겠습니다. 46일 동안의 단식을 통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던 분이죠. 유민 아빠 김영오 씨, 만나보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나와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오랜만에 뵙네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안녕하십니까.

▷ 한수진/사회자:

건강 어떠세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건강은 많이 좋아지고 있고요. 좀 소화만 못 시키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소화는 여전히 좀 안 되시고, 예전 몸 상태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셨네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아직 좀 그건 안 되더라고요, 근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라서.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46일간의 단식이 후유증이 없을 리가 없죠. 2014년 김영오 씨에겐 어떤 한 해였을까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고, 또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유민이를 위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한 해이기도 하고요.

▷ 한수진/사회자:

그래요, 사실 우리 사회도 그렇지만 김영오 씨 개인적으로도 4월 16일 그 날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죠?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 (한숨) ... 변화라는 것은 제 자신이 너무 변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제가 사회에 대해서 눈도 못 뜨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자체를 보려고 하지도 않고 지켜보려고도 안 했었지만, 이제 4월 16일 이후로 세상이 돌아가는 걸 다시 배웠다는 겁니다.

▷ 한수진/사회자:

세상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됐다... 특히 장기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 목숨을 건 단식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그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처음 단식을 시작할 땐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모르셨잖아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처음에는 한 3일 정도만 하면 되는 건 줄 알고 7월 16일까지만 하자 해서 저희가 시작을 했던 거죠. 

▷ 한수진/사회자:

그렇죠.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단식을 하신 건데, 하지만 꼭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야 하나, 이런 비난도 많았어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저희 같은 힘없는 아비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목숨밖에, 바쳐서 진실을 알아야 되겠다, 유민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들 한이 된 게 너무 많아서 목숨이라도 바쳐서 꼭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러면 그 선택에 대해서 지금 후회는 없으시고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후회는 없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그렇게 진상규명을 간절하게 촉구했는데 지금 어떠십니까? 여러 가지 상황을 돌아보실 때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아직 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것이 시작도 안 됐고 발족도 안됐기 때문에, 이제 내년 1월 1일에 발족이 되면 시작하는 거니까 진상규명은 내년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진상규명 어떻게 되는지 또 지켜봐야죠. 유민아빠로서 당시에 “잊지 말아 달라” 말씀 참 많이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앞서 김성훈 씨도 똑같은 말씀하셨는데요. 어떠세요? 지금도 같은 심정이신가요?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지금 보면 처음 저희가 단식할 때보다 많은 시민들이 지금 좀 잊혀져가는 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수구언론이 진실한 보도를 해주고 저희를 폄하하고 비하하지 않았으면 이 정도까지는 안됐을 겁니다. 

시간이 너무 오랫동안 흘러버리니까 국민들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고요. 그래서 저희가 전국으로 간담회를 다니면서 끝까지, 아직 진실은 밝혀진 게 없으니까 세월호 잊지 말고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 좀 드리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안산에 있는 유가족들은 종종 만나고 계십니까?

▶ 김영오/ 세월호 희생자 故김유민 양 아버지

네, 분향소에 가끔 가서 보긴 합니다. 저는 이제 간담회를 많이 다니고, 간담회가 없을 때는 광화문에 가기 때문에 분향소는 오전에만 좀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광화문에는 상주하시는 부모님이 있고요. 나머지 부모님들은 한 50여 분 정도가, 지금 특별법을 오해하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그래서 전국에 간담회를 한 50여 분이 다니고, 나머지 분들은 또 이제 공방이라고 저희가 만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분향소에. 시민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고. 그래서 분향소에서 리본도 만들고 그러면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네, 마지막 날도 광화문에서 보내실 거라는 말씀이군요. 오늘 인터뷰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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