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최대 대목인 연말 판세를 가늠할 크리스마스 이브 대전에서는 압도적인 승자는 없었습니다.
먼저 박스오피스를 점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김우빈 주연의 '기술자들'과 다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이 뒤를 바짝 쫓는 형국입니다.
여기에 '호빗: 다섯 군대 전투'와 한석규·고수 주연의 '상의원' 등이 뒤를 이어 설 연휴까지 연말 극장가 최후 승자는 누가 될지 관심이 쏠립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거친 세월의 풍파를 겪고 이제는 꼬부랑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흐느끼는 장면에서 '아버지'들의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습니다.
오늘(2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어제 전국 727개 상영관에서 33만5천529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누적관객수는 231만2천929명입니다.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이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며 만든 영화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란길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잃어버리고,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서독에 광부로 갔다가 탄광에 매몰돼 죽을 뻔했으며, 여동생의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전쟁통인 베트남에 기술 근로자로 갔다가 다리를 다치는 덕수의 일대기가 아버지들을 울립니다.
실제로 예매사이트 맥스무비에 따르면 40대 이상 예매율은 45%에 달할 정도로 영화 속 덕수 일대기가 "한 세대를 살아온 나의 자화상"이라는 아버지들의 공감이 큽니다.
영화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정치적인 색채를 빼고 웃음 코드를 적절히 버무렸습니다.
아버지 세대를 울리는 '국제시장'에 도전장을 낸 영화는 '요즘 대세' 김우빈이 주연하는 '기술자들'.
어제 개봉한 이 영화는 하루 동안 전국 641개 상영관에서 27만4천413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김우빈이 명석한 두뇌를 지닌 금고털이범 역을 맡아 인천세관에 숨은 비자금 1천500억 원을 40분 안에 터는 작전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도둑들'·'범죄의 재구성' 등 기존의 범죄 영화에 비해 꽉 조이는 느낌은 덜 하지만 연말 가볍게 즐길 '킬링타임용 팝콘 무비'로 무난하다는 점이 강점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76년간 해로한 노부부 사랑 얘기가 세대를 뛰어넘어 보편적인 감동을 선사하며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와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등 대작을 꺾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어제 15만588명의 관객을 보태 누적관객수 277만8천523명을 기록했습니다.
진모영 감독은 애초 40∼50대를 주 관객층으로 염두에 뒀다고 했지만 개봉 초기 20대 관객이 많이 몰리면서 입소문을 타고 관객층이 확산한 데서 볼 수 있듯 세대를 초월해 인기몰이 중입니다.
이밖에 '반지의 제왕'과 '호빗' 시리즈의 마지막인 '호빗: 다섯 군대 전투'는 14만4천454명을 모아 누적관객수 165만4천492명을 기록했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들던 상의원을 배경으로 한 '상의원'은 개봉 첫날인 어제 10만8천583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박스오피스 1·2위 작품 모두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결정을 받은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가 각각 배급을 맡은 작품입니다.
공정위는 지난 22일 CJ CGV와 롯데시네마가 자사나 계열사 영화에 스크린 수, 상영기간 등을 유리하게 제공했다며 시정 명령을 내리는 동시에 과징금 55억 원(CGV 32억 원·롯데시네마 23억 원)을 부과하고 두 법인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습니다.
두 배급사가 배급을 맡은 영화 '국제시장'과 '기술자들' 스크린 수는 각각 727개와 641개입니다.
3위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CJ 계열인 CGV 아트하우스가 공동 배급을 맡은 작품입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입소문 외에도 안정적인 배급망이 뒷받침돼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186개 스크린으로 개봉했습니다.
반면 '상의원'은 극장 체인이 없는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와우픽쳐스와 공동 배급한 작품입니다.
영화 자체의 재미와 작품성 등도 물론 흥행의 중요한 요소지만 극장 체인이 있는 대형 배급사의 작품이 유독 좋은 흥행 성적표를 쥔 것은 스크린 수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와는 별개로 올해 연말 극장가의 라인업이 예년과 비교하면 신통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 영화 관계자는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연말 대목치고는 기대보다 개봉작의 스토리가 약하거나 작품성이 부족해 마땅히 볼만한 작품이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