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수감된 쿠바 스파이의 아내가 임신한 사연


'적대관계 청산, 휴머니즘 그리고 생명의 탄생' 53년 만에 재개되는 미국과 쿠바의 역사적인 국교정상화 추진 과정에서 양국 당국자들이 소중한 생명의 잉태를 위해 인류애를 상호 발휘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세계인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쿠바에 수감된 미국인 앨런 그로스와 맞교환 형식으로 미국 교도소에서 풀려난 쿠바 스파이 삼총사 중 한 명인 헤라르도 에르난데스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쿠바 TV에 등장했습니다.

스파이 삼총사 중 대장 격인 에르난데스와 나머지 두 요원의 귀국 장면을 감격에 젖어 지켜보던 많은 쿠바 국민은 에르난데스가 마중 나온 만삭의 아내 아드리아나 페레스의 배를 정성껏 쓰다듬는 장면을 보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르난데스가 첩보 활동을 하다가 1998년 미국 당국에 붙잡힌 이래 전혀 얼굴을 보지 못한 부부가 어떻게 임신을 하게 됐는지, 뱃속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인지 등 구구한 억측이 호사가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광경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에르난데스는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없어 자세한 것을 밝힐 수 없다"면서도 "리모컨으로 '원격 조종'해 성공했다"고 말해 더 큰 궁금증을 낳았습니다.

미국 CNN 방송과 NBC 방송은 에르난데스 부부의 신비로운 임신 과정에 대한 해답을 공개했습니다.

눈치 빠른 이들이 직감하듯, 에르난데스의 정자를 받아 페레스는 인공수정으로 태아를 잉태했습니다.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에르난데스가 분명했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임신 방법이야 간단했지만 적성국 간첩 혐의로 수용된 재소자의 정자가 쿠바로 건너가게 된 경로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미국 언론은 패트릭 리히(민주·버몬트) 연방 상원의원이 이들 부부 임신의 메신저 노릇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리히 의원은 미국과 쿠바 두 나라의 관계 정상화를 꾀하고 쿠바에 4년 넘게 억류된 미국인 그로스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부인 마르셀과 함께 지난해 2월 쿠바를 찾았습니다.

그때 아이를 몹시 갖고 싶어한다는 페레스의 딱한 사연을 듣고 도와줄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습니다.

리히 의원의 보좌관인 팀 리저는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42∼43살로 보이던 페레스는 리히 의원과의 접견 때 미국에서 종신형을 두 번 연속 선고받은 남편의 출소를 기대하지도 않았다"며 "다만 가임 연령이 끝나갈 무렵임을 알고 아이를 잉태하는 데 필사적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인 리히 의원 부부는 페레스에게 동정심을 느껴 임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리히 의원 측은 쿠바 당국자에게 휴머니즘적인 시각에서 부부의 임신을 돕겠다는 뜻을 알렸습니다.

미국 국무부와 교정 당국을 통해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이 가능하다는 답을 얻은 리히 의원 측은 캘리포니아 주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에르난데스의 정자를 채취해 이를 쿠바에 전달했습니다.

쿠바는 관련 수송 비용 등을 모두 부담했습니다.

남편의 정자를 받아 두 번째 시도 만에 마침내 임신에 성공한 페레스는 2주 후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에르난데스 부부는 미국과 쿠바 당국자 간 휴머니즘의 값진 산물이자 53년 만에 이뤄지는 두 나라 국교정상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아이의 이름을 헤마(Gema)로 부르기로 하고 그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를 비롯한 쿠바 스파이의 첩보 활동으로 가족을 잃은 마지 쿨리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쿠바에 수감 중인 사람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반해 에르난데스는 임신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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