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는 적막감이 흐른다


18일 오후(현지 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 구시가지 중심가에 있는 북한대사관.

미국과 쿠바가 53년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를 전격으로 발표한 뒤 쿠바의 외국 공관 중 가장 당혹스러웠을 것으로 여겨지는 곳입니다.

북한은 쿠바에 1961년 대사관을 개설해 우호 관계를 다져왔고, 미국은 같은 해 쿠바에서 외교관을 철수시키며 외교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17일 정오 동시에 성명을 발표한 지 하루가 지났지만, 겉으로 보기에 북한대사관 건물은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축 늘어진 채 정문에 걸려있는 인공기가 마치 북한 측의 당혹감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습니다.

다만 몇몇 인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의 사진이 걸린 건물 벽보판의 유리를 닦느라 분주히 손을 놀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이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였습니다.

북한대사관 직원들은 3주기 추모행사로 바쁜 와중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대사관 건물은 쿠바가 수교한 나라의 대사관 가운데 최도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른바 '형제 국가'에 대한 예우 차원입니다.

북한대사관 건물 인근에 사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언제나 그렇듯이 조용했다"면서 "밖에서 봐서는 별다른 분위기의 변화를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혁명정권을 수립한 직후인 1960년 8월 쿠바와 수교했습니다.

이듬해 4월과 10월 아바나와 북한 평양에는 상주 공관이 개설되고 이후 정치, 군사적으로 긴밀한 동맹관계를 이어왔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1986년 3월 방북했을 때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소총 10만 정을 무상으로 받은 일을 얼마 전까지도 회고하면서 고마워했습니다.

북한 청천강호는 지난해 7월 쿠바에서 선적한 지대공 미사일과 미그-21 전투기 부품 등을 설탕 10만 포대 밑에 숨겨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려다 적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쿠바 정부는 "설탕은 무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쿠바와 서로 아낌없이 주는 원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북한은 당장 내년 초부터 미국이 대사관을 개설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전망입니다.

세계 언론들은 북한 측의 대응이나 향후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는 쿠바가 사상과 이념의 길을 함께 걷는 북한을 저버리지 않고 껴안고 가게 될 것이라고 쿠바 현지의 일부 관측통들은 예상합니다.

또 전세계를 놀라게 한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의장의 '깜짝 이벤트'를 쿠바가 북한에 사전 통지하고 양해를 구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아바나 일각에서 떠돕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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