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0년간 인류 문명과 산업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물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크게 기여한 물질 가운데 하나는 바로 석유일 것이다. 인류가 석유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기간은 100년 정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가 석유와 관련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석유를 캐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추공을 뚫었을까? 세계적으로 시추공이 얼마나 있는 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최근 ‘해양과 석유 지질학(Marine and Petroleum Geology)’이라는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브라질, 호주, 폴란드,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바레인 등 9개국 육상에 있는 석유나 가스 시추공은 300만개 정도나 된다(Davies et al.,2014, 표 참조).
<표> 국가별 육상 시추공 수 (자료: Davies et al.,2014)
물론 시추공 숫자는 각국에서 공개한 숫자다. 공개되지 않은 것, 100년 전에 시추해서 어디에 시추했는지 기록이 없는 경우,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다른 산유국의 시추공을 모두 포함시킬 경우 세계에 있는 시추공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학계는 현재 석유나 가스를 뽑아 올리지 않는 폐시추공(abandoned oil and gas well)이 세계적으로 적어도 400만개는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류 문명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시추공이 요즘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폐시추공에서 이산화탄소보다 20배 이상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으로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은 메탄인데 시추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던 천연가스가 시추공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400만개나 되는 모든 폐시추공을 제대로 관리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지구온난화나 환경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초창기에는 석유나 가스를 뽑아 올린 뒤 시추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방치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이 펜실베이니아 지역에 있는 19개의 폐시추공에서 메탄이 어느 정도 배출되는 지 직접 측정했다(Kang et al., 2014). 측정 결과 시추공 입구가 막혀 있든 열려 있든 관계없이 모든 시추공에서 메탄이 배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추공 입구가 막혀 있어도 열려 있는 경우보다 오히려 메탄이 더 많이 배출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19개 시추공 가운데 3개에서는 다른 시추공보다 수천 배나 많은 메탄이 배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시추공 가운데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던 이른바 메탄 슈퍼 배출원이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기 중 전체 메탄의 양은 지구상에서 배출하는 메탄의 양보다 많아 인간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메탄 배출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폐시추공 가운데 슈퍼 배출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폐시추공에서 배출되는 메탄의 양은 이 지역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전체 메탄 양의 4~7%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양이다. 지금까지는 석유와 셰일가스를 비롯한 천연가스의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에서 누출되는 메탄을 줄이는 데만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세계에 버려진 폐시추공도 다시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석유나 가스 생산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추공을 뚫기 시작한 지난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폐시추공이 방치됐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조차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메탄 배출량을 측정한 19개 폐시추공 가운데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던 것은 단 1개에 불과 했다. 나머지 시추공은 숲이나 들, 심지어 개인 집 마당에 마치 파이프를 꽂아 놓은 것처럼 방치돼 있었다. 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기록 자체가 없는 것이었다.
100년 이상 인류 문명과 산업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석유와 가스, 생산에서부터 운송과 소비, 그리고 폐시추공까지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앞으로 인류 문명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온난화 재앙을 재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참고문헌>
* Davis, R. J. et al., 2014: Oil and gas wells and their integrity: Implications for shale and unconventional resource exploitation. Marine and Petroleum Geology 56, 239-254.
* Kang et al., 2014: Direct measurements of methane emissions from abandoned oil and gas wells in Pennsylvania, Proceedings of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10.1073/pnas.1408315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