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에르도안-귤렌 전쟁' 새 국면…혼란 가중

에르도안, 귤렌 측 언론인 대거 검거 후 "계속 응징"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이슬람 사상가 페툴라 귤렌 간 충돌이 격화하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찰이 귤렌 측 언론인을 대거 검거한 이튿날인 15일(현지시간) 검거 작전을 "정상화 과정의 일부"라며 귤렌 측 세력 숙청을 계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번 검거를 트위터로 폭로한 내부고발자는 모든 작전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시하고 있으며 귤렌 측 언론뿐만 아니라 주류 언론도 검거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은 언론인 검거를 쿠데타라고 비난하고 정부의 부패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내년 6월 총선까지 정국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정 불안 등에 따라 리라화 가치는 전날보다 1.4% 떨어진 달러당 2.33리라에 거래돼 지난 1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에르도안, 1년 걸친 귤렌 측 숙청 막판 총력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한 에르도안 대통령과 '히즈메트'(봉사)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끈 귤렌은 2002년 정의개발당이 집권한 이후 손을 잡고 세속주의 세력에 대항했지만 지난해 12월 부패수사로 완전히 적으로 돌아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미국에 자진 망명 중인 귤렌이 검찰과 경찰에 있는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며 검경 지휘부를 즉각 교체하고 대대적 인사를 단행해 귤렌 세력 숙청에 나섰다.

그는 지난 12일 한 연설에서 "지난해 12월 작전은 부패 수사가 아니라 쿠데타 음모"라며 "그들이 나를 체포하려는 계획이 준비됐고 정부를 전복시킨 이후의 내각 명단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귤렌을 따르는 세력은 '제마트'(공동체)로도 불리며 경찰과 사법부, 언론계, 교육계 등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귤렌 측을 '국가 내부의 불법 갱단', '평행 정부', '테러 조직' 등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뿌리 뽑겠다는 발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반면 귤렌 측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평행 정부'라는 선동으로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려 한다고 비난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경찰과 사법부에 대대적 인사를 단행한 이후 부패사건을 담당했던 검경을 불법 도청과 체제 전복 등의 혐의로 대거 체포했다.

정부는 주요 부처에서 귤렌 지지자 색출 작업에 나섰고 귤렌 측 기업들에는 세무조사로 응징했으며 귤렌과 관련됐다고 알려진 은행인 방크아시야는 지난달 지점 80개를 폐쇄했다.

이런 일련의 숙청에 따라 전날 경찰이 펼친 일간지 자만과 사만욜루TV 등 귤렌 측 언론사에 대한 검거 작전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에르도안, '언론 탄압' 비난에 "기사 날조한 집단" 반격

경찰은 전날 자만의 편집국장과 사만욜루TV 회장 등 고위 인사 외에도 사만욜루 TV가 방영하는 드라마 '테크 튀르키예'(하나 된 터키)의 제작진을 대거 체포했다.

검찰이 이 드라마의 PD와 작가, 보조작가, 그래픽디자이너까지 검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번 작전을 언론 탄압이 아니라 귤렌이 미디어를 이용해 사실을 날조했다는 주장을 펴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친정부 성향의 언론인 사바흐 등은 이 드라마는 특수부대가 알카에다를 검거하는 액션물로 '타흐시예 그룹'을 테러 조직으로 묘사했다고 보도했다.

사바흐는 올해 초 유출된 감청자료에는 귤렌이 사만욜루TV 관계자에 타흐시예 그룹을 테러조직으로 보이게 하라는 대화가 녹음됐다고 밝혔다.

타흐시예 그룹은 경찰이 2010년 1월 알카에다와 연계했다며 적발한 범죄조직으로 당시 122명이 검거됐다.

이 그룹의 지도자로 17개월형을 복역한 메흐메트 도안은 귤렌의 사상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정부 언론들은 당시 주요 증거에서 용의자가 아닌 경찰관의 지문이 발견되는 등 경찰 내부의 귤렌 측 세력이 도안을 겨냥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이 사건을 지휘했던 이스탄불 경찰청의 테러국장과 조직범죄국장 2명도 전날 함께 체포됐다.

반면 자만은 경찰은 당시 122명을 검거하면서 수류탄 2개와 탄약, 테러 계획과 관련한 지도 등이 압수됐고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제조 기술 등을 배우고 온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이즈미트에서 열린 행사에서 "조작된 기사들을 이용해 터키의 방향을 설정하려는 자들과는 절대 화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귤렌 측 언론이 사실을 날조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언론 탄압을 비판한 유럽연합(EU)에 대해 "이런 거짓말에 신경 쓰지 말라"며 "일어난 모든 일은 정상화 과정들"이라고 말했다.

정부를 대변하는 일간지 예니샤파크의 메르베 셰브넴 오루츠 칼럼니스트도 전날 트위터에 "언론 자유? 무고한 사람을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한 기사를 쓴 것이 귤렌 미디어가 수년 동안 해온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EU는 정말 웃긴다, 터키가 범죄조직에 대한 작전을 착수하면서 서방에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내부고발자 "다음 표적은 주류·독립 언론"

이번 검거 작전은 트위터에서 '푸아트 아브니'란 가명을 쓰는 내부고발자에 의해 먼저 알려졌다.

아브니는 지난 11일 트위터에 언론인 150명을 포함해 400명을 검거할 계획이라며 관련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3일에는 자신의 폭로로 에르도안 대통령이 진노해 검거가 연기됐으며 언론 탄압이란 비난을 고려해 언론인 검거 대상을 줄여 다시 검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탄불 경찰청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확보한 명단이라며 체포 대상을 공개했으며 이는 14일에 체포영장이 발부된 대상과 대부분 일치했다.

그는 이 회의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검거 대상에 귤렌이 포함되지 않자 그를 넣으라고 지시했으며 작전은 25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검거 대상에서 주류 언론과 독립 언론은 제외됐지만 정부가 1차로 작성한 명단에서는 포함됐고 귤렌 측 언론 탄압을 끝내면 다른 명분으로 탄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 내부의 귤렌 세력을 파헤친 책을 썼다가 2011년에 구속된 탐사보도 언론인 아흐메트 시크는 전날 트위터에 경찰이 자만 본사에서 검거 작전을 펼친 것을 비난하며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라고 밝혔다.

아브니란 계정은 정부 내부의 귤렌 측 인사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이란 추측 등이 나오고 있지만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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